뉴욕리뷰오브북스의 편집장이었던 이안 부루마는 2018년 성폭행 혐의를 받는 록스타이자 인기 라디오 진행자인 고메시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가 해고됐다. 당시 고메시는 법적으로 무죄를 받았으나 여론에서는 이미 범죄자나 다름없었다. 부루마는 도덕적으로 잘못됐을지 모르지만 법적으로 무죄인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기사화를 추진했지만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성, 인종, 젠더 등 예민한 주제를 다룰 때 다른 의견을 내거나 단어 하나 잘못 말해도 비난이 쏟아지고 경력까지 끝나는 일들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신간 ‘잘못된 단어’는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빠진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 진보 잡지 ‘슈피겔’의 워싱턴 특파원인 르네 피스터(사진)다. 저자는 미국, 독일에서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새로운 독단주의로 치닫는 현실을 목격하고 이같은 현상을 분석했다.
책에서 그는 진보를 위한 무기, 특권층의 탄압에 맞서 약자가 쓸 수 있는 방어 수단이었던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올바름의 여부라는 기준에 따라 위협 받는 사례들을 설명한다. 2020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법학 교수인 제이슨 킬본은 직장 내 차별을 다루는 과제를 제시하며 흑인과 여성을 모욕하는 단어 ‘n…’과 ‘b…’를 축약해 사용했다가 정직 당했다. 흑인대학생회로부터 해당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테러라고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도리언 애벗은 같은 해 유튜브에 모든 학생을 똑같이 학자로서 유망한지 여부만 따져 대해야 한다는 영상을 올렸다가 강연을 취소해야 했다. 흑인, 아시아 등 소수에 속하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모두 인권, 자유에 대한 의식이 높다고 자부하는 일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의견을 제압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사례들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냈다가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조차 없게 타격받는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독단주의가 학교, 언론, 기업, 공공기관, 문화예술계 등 일상생활을 좌우하는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고 평가한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에 의한 지나친 검열은 급진적 소수의 목소리만 확성기처럼 전달하는 데 그치게 된다. 다양한 의견은 사라지고 공론의 장은 소멸된다. 오히려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해 정치적 올바른 이미지를 구축하고 노동 착취 등 근본적 문제를 숨기는 기업들도 나온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목적은커녕 사회를 극단적 분열과 갈등의 장으로 전락시킨다.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비단 미국, 독일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차별주의자로 손가락질 받을까 봐 두려워 입을 닫게 되는 현상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저자는 “우파 포퓰리즘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며 “인종차별 반대, 평등, 소수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이념, 누구도 피부색이나 성별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헌법 등을 무시하려는 독단적 좌파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꼬집는다. 1만7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