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림자 조세’로 불리는 91개 부담금에 대한 개편 방안을 다음 주 발표한다. 규모가 가장 큰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요율을 낮추는 방안을 포함해 국민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폐지·감면안이 나올 예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2일 “전력기금이 목표와 맞지 않게 쓰이는 측면이 있다”며 “전력기금을 손볼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기금 부담금 요율을 현행 전기요금의 3.7%에서 2% 수준으로 내리는 안을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기금 부담금은 전력수급 안정 등을 위해 전기 사용자에게 부과되는 부담금으로, 2022년 기준 전체 부담금 징수액의 10.6%에 달한다. 올해 징수 목표액은 3조 2000억 원 가량이다.
이는 정부가 기업과 국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항목을 최대한 손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 부담금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큰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기업들이 기업 경영 시 가장 부담을 느끼는 항목으로 꼽힌다. 전기요금이 계속 오르고 있는데 요율은 낮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8.3%는 최근 3년간 부담률이 가장 높아진 항목으로 전력기금 부담금을 꼽았다.
전력기금 부담금이 전기 산업 발전 이외에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점도 정부가 전력기금 부담금을 개편하려는 배경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전력기금 부담금 징수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3조 원을 넘겼고 올해는 3조 20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중 1조 3100억 원은 전기자동차 보조금 지급 등을 위한 에너지특별회계로, 2000억 원은 기후환경기금으로 전출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원인자나 사용자가 아님에도 유지되고 있는 조세성 부담금이 현재 반 이상은 된다”며 “재정 충당 등의 목적을 가진 조세성 부담금은 조세로 전환하는 등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개편 작업을 통해 총 91개 부담금 가운데 최소 3분의 1 이상은 폐지되거나 경감될 수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부담금 개편 논의에 밝은 한 관계자는 22일 “절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3분의 1 이상은 손을 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중에서는 정유사 등 원유 수입·판매 업체에 매기는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도 개편 대상으로 거론된다. 현재 정부는 기업이 원유·석유 제품을 수입할 때마다 가격과 상관없이 ℓ당 16원을 부과하는데 ℓ당 부과금을 낮추면 원유 도입 단가가 내려가 주유소 휘발유값 인하도 이끌 수 있다. 이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3월부터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 제도를 검토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고자 할 때 내는 농지보전 부담금이나 어업·양식업자에게 부과되는 수산자원조성금, 유류 업체나 대형 선사에 징수하는 방제 분담금, 껌 제조사에 판매가의 1.8%를 징수하는 껌 폐기물 부담금 등도 폐지 또는 완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1일 물 이용 부담금을 포함한 18개 법정 부담금 개선 과제를 기재부에 건의하며 “부과율을 현실에 맞게 낮추고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등은 감면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국민 생활에 스며든 준조세 격 부담금들도 손볼 방침이다. 관광진흥개발금 1만 원에 국제질병퇴치기금 1000원을 더해 항공권 가격에 포함됐던 출국납부금이 대표적이다. 주요 부담금이 폐지 또는 완화될 경우 물가를 자극하는 각종 민생 요금도 소폭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7일 “‘국민 부담 완화’라는 대원칙에 따라 2022년 부담금관리기본법 제정 이후 최초로 대대적 규모로 이뤄진다”며 “조만간 전체 부담금 정비 모습과 개별 부담금 경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규제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부담금은 가급적 손대지 않기로 했다. 국민들이 직접 부담하지 않는 부담금도 검토 대상에서 빠졌다. 부담금 개편 작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기재부나 금융위원회 쪽에 있는 부담금은 딱히 조정할 게 많지 않다”며 “국민들이 직접 부담하지 않고 금융사들이 내는 부담금이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환경 부담금 등은 조정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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