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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로 부족할때'와 '헛개차'의 배신

[지구를 해치는 기업들]①안 떼지는 페트병 라벨

남은 접착제·라벨 조각, 고품질 재활용 막아

제품 개선한 코카콜라, 남는 조각 없이 뜯겨

우수한 제품 '매일유업 썬업, HY 야쿠르트'

분리배출 불편한 롯데칠성·웅진 등 개선 필요





※안녕하세요, 지구용입니다. 2021년부터 뉴스레터와 기사로 지구용사님들과 만나왔지만 이번에는 지구용을 정식 매체로 창간하면서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창간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싶던 차에 책상 위의 페트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인 1명당 생수 페트병만 연간 109개(2020년 기준·그린피스)개를 쓸 정도로 흔한 물건인데도 여전히 분리배출도, 재활용도 아쉬운 물건입니다.

일상을 바꾸는 배움과 실천을 은은하게(!) 외쳐 온 지구용이 창간 기념으로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앞으로 페트병을 볼 때마다 꼭 이번 이야기를 떠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숙련된 지구용사님이라면 직접 페트병을 소비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페트병이 제대로 재활용되려면 라벨을 뜯은 후 찌그러뜨리고 뚜껑을 닫은 채로 분리배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라벨을 뜯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몇몇 제품은 깔끔하게 뜯어서 버리기 쉬운데 대부분의 제품은 잘 뜯어지지가 않습니다. 어떤 라벨들은 사람 손으로 뜯으라고 만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고, 또 어떤 라벨은 뜯어도 끈적한 접착제가 남아 찝찝한 여운을 안겨줍니다.

▲라벨과 접착제가 페트병 재활용을 망치는 이유


분리배출한 페트병은 잘게 분쇄된 후 세척, 라벨 분리 등의 과정을 거쳐 페트병 또는 섬유의 원료로 쓰입니다. 그런데 페트(PET)가 아닌 PP 소재의 라벨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불순물’과 다름없고 고품질 원료로의 재탄생을 방해합니다.

또 라벨과 페트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가성소다(NaOH)가 투입됩니다. 이른바 '양잿물'입니다. 당연히 작업자들의 건강에 좋지 않고, 환경 오염을 유발합니다. 이 과정을 거친다 해도 가성소다가 접착제를 완벽히 없애지 못하는데요. 접착제가 남아있으면 페트를 섬유로 재탄생시킬 때 실을 끊어지게 합니다. 역시 재활용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재생섬유를 만드는 데 필요한 폐페트병의 90% 이상을 일본, 대만 등으로부터 수입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들이 가장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걸까요? 페트병을 제조사별로 모아봤습니다. 롯데칠성음료, 한국코카콜라, 광동제약, 매일유업, 웅진, 동아오츠카, 동원, 서울우유, HY(한국야쿠르트), 해태HTB(모회사 LG생활건강), 일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삼다수) 등의 페트병 라벨을 뜯어봤습니다. 새로운 소비는 최대한 줄이기 위해 친구가 마시고 난 페트병을 받아오기도, 쓰레기통에서 주워오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깨끗하게 뜯긴 ‘썬업 주스’와 ‘야쿠르트’, 반면…


우선 접착식 라벨인 제품들은 아주 뜯기 편했고, 뜯은 후 끈적끈적하게 남는 접착제도 별로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코카콜라 라벨이 지저분하게 뜯기곤 해서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원성이 상당했지만, 작년 말부터 라벨 개선 작업이 이뤄져 아주 깨끗하게 뜯겼습니다. 과거 제품과 비교해보니 페트병 위에 남는 조각도 없었고, 남는 접착제도 생수류 제품과 비교해 더 적었습니다.

라벨 개선 전 생산된 코카콜라 제로 페트병.


라벨 개선 후의 오리지널 코카콜라 페트병.


다만 접착식 라벨이면서 접착제를 비교적 많이 써 지저분하게 뜯기는 제품들도 있었습니다. 일화의 천연사이다는 접착제가 강해서인지 라벨 조각이 제대로 뜯어지지 않고 페트병 몸체에 남았습니다. 롯데칠성의 대표 제품인 칠성사이다는 조각이 남거나 하진 않았지만 비교적 넓은 면적에 도포된 접착제의 흔적이 많이 남았습니다.

절취식 라벨 중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뜯기는 제품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매일유업의 ‘썬업 오렌지 주스’와 HY(한국야쿠르트)의 ‘야쿠르트’였습니다. 두 제품 모두 라벨 자체가 얇으면서 절취선 그대로 시원하게 뜯겼습니다. ‘훌륭하다’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이어 해태HTB의 썬키스트 자몽소다, 동아오츠카의 포카리스웨트가 준수하게 잘 뜯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잘 뜯기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제품은 광동제약의 ‘헛개차’와 ‘옥수수수염차’, 롯데칠성의 ‘솔의눈’과 ‘이프로 부족할때 아쿠아제로’, 웅진의 ‘아침햇살’과 ‘자연은 오렌지100 주스’였습니다. 질기고 잘 뜯어지지 않는 절취선, 결국 귤껍질처럼 세로 방향으로 찢어지는 라벨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롯데칠성의 이프로 부족할때 아쿠아제로


광동제약의 헛개차


많이 파는 기업이 먼저 바뀌어야


좀 더 많은 소비자들이 참여한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해 10~11월 서울환경연합과 대구환경연합 자원순환프로젝트팀인 ‘쓰레기고객센터’는 라벨 분리가 편한 정도를 (손으로 뗄 수 있고 한번에 분리), (손으로 뗄 수 있지만 한 번에 분리되지 않음), (손으로 떼기 어려워 도구가 필요)로 나눠 조사했는데 총 167건의 응답 중 78개는 '중'을, 16개는 '하'를 받았습니다. '중'에서 롯데칠성음료가 15개(19%)를, 한국코카콜라가 14개를(18%), 웅진식품은 7개(9%)를 기록했습니다. '하'에서도 한국코카콜라(7개·44%), 롯데칠성(5개·32%)로 조사됐습니다. 라벨 제거 후 흔적이 남지 않는 페트병은 109개, 남는 페트병은 58개였는데 58개 중 37%가 한국코카콜라 제품, 21%는 롯데칠성 제품이었습니다.

다만 코카콜라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코카콜라는 “페트병 재활용 공정에서 라벨이 잘 분리되는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를 쓰되 기존보다 적은 양을 사용하면서도 접착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합니다. 코카콜라 외에 닥터페퍼, 토레타 등 한국코카콜라의 다른 음료들도 뜯어봤는데 실제로 ‘뜯김성’이 양호했습니다.

절취선이 있지만 떼어내기 어려웠던 제품들


롯데칠성이 '버리기 불편한 페트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만큼 잘 팔려서이기도 할 겁니다. 그린피스가 지난 1월 발표한 '2023 플라스틱 배출 기업 조사보고서 - 우리는 일회용을 마신다'에 따르면 일회용 플라스틱 배출량이 가장 많은 생수·음료류 기업 1위는 롯데칠성, 2위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삼다수), 3위는 코카콜라, 4위는 쿠팡(오로지 PB상품 '탐사수' 1종만 판매. 쿠팡에서 생수 시켜 드시는 분들이 엄청 많단 의미), 5위는 동아오츠카였습니다. 이들 5개 기업의 생수·음료류 폐플라스틱은 전체 생수·음료류 폐플라스틱 3만2373개 가운데 9964개로 30.8%나 됩니다.

▲일주일 간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1인당 41.3개


전체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중 식품 포장재 비율은 78.3%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폐기하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대부분이 식품포장재였습니다. 특히 생수 및 음료류에서 식품 포장재의 48.1%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고, 전체 일회용 플라스틱에서는 37.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3개 중 1개가 일회용 음료에서 나온다는 얘기. 특히 생수 및 음료류는 4년 연속 가장 많은 배출량을 기록하는, 변화가 가장 시급한 제품군입니다.

자료=그린피스


참고로, 그린피스의 2023 플라스틱 배출량 조사에는 2084명이 참여했는데 일주일 동안 1인당 약 41.3개의 일회용 플라스틱을 배출했습니다. 총 배출량은 무려 8만6055개.

많이 파는 기업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요? 1~3위 중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삼다수)는 2023년 기준 무라벨 제품 비중이 출시 2년 만에 40%까지 올랐고, 2026년에는 무라벨 비중 100%가 목표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코카콜라는 소비자들의 촉구에 맞춰 라벨을 개선했죠. 이제 롯데칠성, 그 다음으로는 광동제약과 웅진이 변화할 때입니다.

'나쁜놈'을 지목해 때리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 이 회사들에서 떼기 편한 라벨을 만들어준다면 더 큰 변화를 불러올 겁니다. 이들 회사가 종종 선보이는 친환경 캠페인이 무색하지 않도록, 기업들의 그린워싱에 대한 소비자들의 냉소가 더욱 짙어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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