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사과 값은 떨어졌지만 여기는 아닙니다. 정부에서 대형마트 위주로만 할인 혜택을 주니까요.”
“30년을 과일 중도매상으로 일했는데 이런 물가는 처음입니다. 과일 소매점부터 장사가 잘 돼야 하는데 유통이 안되다 보니 (중도매 업체도) 꽉 막혔죠.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의미 아닐까요.”
27일 오전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내 과일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중도매 상인들이 분주하게 장사를 준비하는 것과 달리 손님 발길은 드물었다. 과일을 구입하러 온 일반 소비자들은 “비싸다”며 발길을 돌리거나 소량만 구입했고, 소매상들은 단돈 1000원이라도 더 싸게 구입하기 위해 흥정에 여념이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 거래량도 급감했다. 중도매 상인들은 “예전에는 100박스씩 팔리던 과일이 지금은 20~30박스밖에 안 나간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납품 단가 지원, 농수산물할인(농할) 등 대규모 자금을 지원한데다 마트 자체 할인까지 더해져 과일 소매가격이 10% 가량 하락하는 등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 중도매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농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후지 사과 상품 10kg 상자 중도매 평균가는 9만 1860원으로 1년 전(4만 1730원)보다 약 120% 올랐고, 한 달 전(8만 9492원)보다도 3%가량 높아졌다.
같은 날, 신고 배 상품 15kg 상자 중도매 평균가는 11만 2400원으로 1년 전(4만 3300원)보다 약 160% 올랐다. 한 달 전(9만 728원)과 비교해도 24%가량 뛰며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사과와 배 재배면적 감소에 냉해·병해충 피해가 겹쳐지면서 생산량이 급감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탓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사과 저장량은 약 20만 3000톤으로 전년(29만 2000톤) 대비 31%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배 저장량 역시 지난 2022년 12만 8000톤에서 지난해 8만 8100톤으로 줄면서 약 31% 감소했다. 공급량이 감소하면서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 사과와 배 도매 가격이 모두 높아진 셈이다.
중도매상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39년째 가락시장에서 과일을 판매 중이라는 장 모(70) 씨는 “조금 하자가 있는 사과 특상품도 10kg 한 상자에 7만~8만 원이 넘고, 배는 한 상자에 8만 5000원쯤 한다”면서 “롯데마트·하나로마트 같은 대형마트에나 정부가 혜택을 주고 있지, 우리한테는 아무런 지원도 없어 과일 값이 계속 비싸다”고 한탄했다.
30년 가량 과일 중도매상으로 일했다는 정 모(61) 씨는 “그동안 가격이 올랐다 해도 잠깐 뛰었다가 내려갔는데, 지금은 과일량이 적어진데다 과일 가꾸는 인부들도 적어지고, 인건비도 뛰는 등 여러 문제가 동반되면서 물가가 안 잡히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산지 물량 부족 이외에 사재기, 부정 유통 행위 등의 요소가 중도매인 가격을 끌어올린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면서 “수급 차원의 대책으로는 소매가격 인하와 대체 과일 수입 물량 증가, 가공용으로만 사용하던 못난이 과일 공급 등을 시행 중이며, 이외 대책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