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궂은 비가 내리던 28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를 타고 38km가량 떨어진 제주 한경면 두모방파제에 가보니 직경 91.3m의 블레이드(날개)가 달린 높이 80m 이상의 풍력발전기 10기가 줄지어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2017년 9월 국내에서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제주 탐라해상풍력단지였다. 우려했던 소음은 파도소리에 묻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날 오전 떨어진 낙뢰에도 불구하고 4기의 바람개비들은 끄덕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머지 6기는 날이 개는대로 현장 점검 후 재가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 같은 뛰어난 내구성과 신속한 초동 대처가 가능한 것은 국내 에너지 분야 드림팀인 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러티(옛 두산중공업)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집약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공유수면 8만 1000㎡에 들어선 설비용량 30㎿(3㎿ × 10기)의 탐라해상풍력단지는 국산화 비율(LCR 기준)이 76.9%에 달한다. 특히 하부구조물(30%), 터빈(19.9%), 블레이드(14.3%) 타워(12.7%) 등 주요 부품을 사실상 전부 한국산으로 채웠다. 총사업비는 1650억 원이다.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건설된 탐라해상풍력단지는 우리나라에 해상풍력발전 시대의 개막을 알린 곳으로도 평가받는다. 6년간 가동률 98.1%, 이용률 29.0%로 생산한 전력량은 약 50만MWh다. 이는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 기준 제주 전체 가구인 31만 3000여 가구에서 약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남동발전 측은 사업비 4000억 원을 더 들여 72㎿(8㎿ × 9기)의 설비용량 확장을 추진 중이다. 고춘희 금등리 이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소음 문제가 없는 데다 어획량도 줄지 않아 확장에 반대하는 해녀, 주민들은 거의 없다시피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서 30분(24km)가량 차를 몰아 애월읍 어음육상풍력단지에 다다랐다. 비바람 속에서도 4.2㎿의 풍력발전기 5기가 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간 총 사업비 820억 원 규모의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사업소다. 가동률(95%)과 이용률(32%) 모두 준수하다. 연간 5만 8012MWh의 친환경 청정에너지를 생산해 약 1만 66000여 가구에 전력을 공급한다.
이곳의 설비도 국내 기자재 업체들로 구성된 유니슨 컨소시엄이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을 맡았다. 국산화율은 71.0%다. 최근 들어 중국산 풍력설비의 밀어내기식 덤핑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음에도 한국산 이용을 통해 에너지안보를 사수한 셈이다. 태양광발전처럼 풍력발전도 과도한 중국산 사용에 따른 기술 종속과 국내 풍력산업 생태계 파괴 우려가 크다. KOTRA에 따르면 글로벌 풍력시장에서 부품별 중국산 점유율은 블레이드(60%), 발전기(65%), 기어박스(75%) 등에 이른다.
한인수 남동발전 차장은 “기술자립이란 풍력발전기의 전체 시스템 설계를 국내 기술진이 수행하고 제일 중요한 제어시스템의 소스코드(설계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제품의 생산·공급에 어떠한 제한이 없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 부품은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공급받고 있지만, 현대자동차의 부품이 100% 국산이 아니어도 국산차란 수식어를 붙여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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