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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 자발적 참여 이끄는 ‘서비스 디자인’

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에너지 절약 경쟁' 스스로 동참

공공정책 개선 수단으로도 각광

재해 예방·사회적 약자 보호 등

자연스럽게 '나은' 선택 유도를





디자인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뜻밖에도 그렇다. 2008년 영국 보건부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감염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의 디자인진흥기관인 ‘디자인카운슬’을 찾았다. 디자인카운슬은 청소하기 힘든 병원 가구의 후미진 부분에서 발생하는 세균이 감염 사고의 주요 원인임에 주목하고 ‘디자인 벅스 아웃’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모전을 통해 5개의 디자인팀을 선정하고 이들이 제조 기업과 함께 감염을 방지하는 병원 가구를 개발하도록 각 팀당 2만 5000파운드(한화 약 4000만 원)를 지원했다. 닿기 어려운 모서리와 면을 줄여 청소하기 쉬운 병실용 캐비닛이 탄생했고 효과를 인정받아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

2011년 산업통상자원부(당시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에너지 절약을 위한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개발하고 588세대에 시범 적용했다. 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빨강·노랑·녹색 등 색상으로 구분돼 이웃집 대비 우리집 전기 소비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이 고지서는 주민들의 경쟁 심리를 부추기며 시범 단지의 에너지 사용률을 기존 대비 5~10% 정도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오늘날 디자이너들은 특유의 창의성으로 형태가 없는 서비스를 개선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자의 심리와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해 고객의 잠재 욕구를 발굴한다. 고객의 경험을 향상 시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서비스 분야에서 이러한 디자이너의 능력은 큰 도움이 됐다. 이에 사용자 중심 리서치를 기반으로 고객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경험을 향상시키는 ‘서비스 디자인’이 탄생했다.



선진국에서는 서비스 디자인을 민간 영역 뿐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4년 정책 랩(Policy Lab)을 설립하고 서비스 디자인을 활용해 다양한 정책 과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현재까지 250개 이상 진행했다. 일본 정부는 2022년부터 20~30대의 경제산업성 공무원들로 구성된 디자인 혁신 조직을 중심으로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을 만드는 ‘JAPAN+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도 한국디자인진흥원과 협업해 2014년부터 국민이 서비스 디자이너와 함께 공공 서비스를 설계하는 국민정책디자인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처럼 공공 정책 개선 수단으로 서비스 디자인이 각광받는 것은 강제적인 규제나 일방적 설득과 달리 자연스럽게 참여를 이끌어 정책 참여자의 수용성을 높이는 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함께 2021년부터 20개의 제조 기업에 안전서비스디자인사업을 추진했다. 안전한 행동을 유도하는 시각물과 환경 요소가 개발됐고 적용 이후 인명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용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은 자발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을 높인다.

저출생, 중대재해, 사회적 약자 보호, 기후위기 등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공공 문제가 산적해 있다. 국민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규제하면 반발심을 사고 인센티브를 주면 사회적 비용이 많이 증가한다.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서비스 디자인을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산업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 서비스 디자인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추진단을 꾸렸다. 올해부터 서비스 디자인으로 다양한 공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국민의 동참을 유도해 보다 효과적인 공공 정책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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