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아예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하는 국가에서는 전 세계적인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반면 시장 육성에 초점을 맞춰 규제의 틀을 짜는 국가도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을 무조건 금지하는 대신 정부가 요구하는 규제 수준을 준수하는 사업자에게만 라이선스를 제공한다. 이른바 ‘정부 인증’ 마크를 부여, 신뢰할 수 있는 가상자산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믿음직한 사업자에게로 사용자가 몰리고, 신뢰를 얻지 못한 사업자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싱가포르통화청(MAS)이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방식이다. MAS 출신으로 지난해 1월 체이널리시스에 합류한 청이 옹 아태 지역 정책 총괄은 규제 전문가인 만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규제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짚었다.
라이선스 취득 유도…요건 충족 못해도 사업 가능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체이널리시스 한국 지사에서 만난 청이 옹 총괄은 지난해 MAS가 도입한 스테이블코인 관련 제도가 “규제의 측면에서 발전적인 부분”이라고 전했다. MAS는 지난해 8월 스테이블코인규제 프레임워크를 공개하고, 자금세탁방지(AML)·공시 등 특정 요건을 만족한 사업자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하기로 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사업은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획득하지 못하면 영업을 접어야 한다.
청이 옹 총괄은 “기준을 맞추지 못해도 사업은 계속할 수 있다”면서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인증한 스테이블코인으로 수요가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되 신뢰를 얻으려면 라이선스를 취득하도록 장치를 만든 셈이다. 그는 “MAS가 취한 접근 방식은 꽤 진보적”이라면서 “잘 규제된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그림자 규제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막혀 있는 것과 대조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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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STO 시장 규모 적어…자산 토큰화 관심↑
싱가포르는 증권형토큰발행(STO)도 일찍이 도입했다. 다만 그는 “싱가포르에서 STO 시장은 크지 않고, 이마저도 대부분 전문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된다”고 했다. 개인 투자자의 증권형 토큰 투자가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청이 옹 총괄은 “그러나 최근 싱가포르에서도 자산 토큰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MAS는 지난해 11월 자산 토큰화 테스트 진행 계획을 밝히며 여기에 특화된 글로벌 레이어1(GL1) 블록체인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
청이 옹 총괄은 블록체인과 같은 새로운 산업을 규율할 때는 산업 발전 단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자자 피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해도 산업 규모가 작다면, 복잡하거나 무거운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미미한데도 과한 규제를 마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MAS도 처음에는 자금 세탁, 금융 범죄 등 주요 위험에 초점을 맞춘 간단한 제도로 시작해 소비자 보호 등으로 가상자산 관련 규제를 확대해 나갔다”고 전했다. 산업 생태계의 발전 단계에 맞춰 적절한 규제를 도입, 가상자산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는 의미다.
그는 최근 가상자산 가격이 오르며 과거보다 많은 기업이 시장 사이클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이 옹 총괄은 “가격 흐름에 대한 분석이 활발해지고 거래소·기관·커스터디 등 관련 기업들도 사업을 확장하려는 추세”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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