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이드덴버 2024에서 특히 이목을 끌었던 이벤트, 국내에 알릴 만한 프로젝트들을 소개합니다.
Flow 해커하우스에서 만난 코인메트릭스의 리서처와의 대화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코인메트릭스에서 최근 발간한 '신뢰할 수 있는 거래소 프레임워크 2.1' 리포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한국 거래소인 업비트가 이 평가에서 매우 낮은 등급을 받았다는 점이 의외였습니다. 실제로 한국 최대 규모 중앙거래소인 업비트는 종합 평가에서 최하위인 D등급보다 한단계 높은 C- 등급에 그쳤는데요. 데이터 품질, 투명성, 보안, 규제 준수, API 품질 모든 항목에서 C 이하 등급을 받았습니다.
‘가짜 거래’ 몰아내려는 코인메트릭스
이에 대해 질문하니 코인메트릭스 연구원은 데이터 품질 평가에 사용된 방법론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코인메트릭스는 거래소의 데이터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진짜' 거래량을 가려내고자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거래 패턴 분석(Trade Permutations), 거래 규모 분포 분석, 벤포드 법칙 적용, 거래량 상관관계 분석 등의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거래 패턴 분석 결과가 흥미로웠는데요. 정상적인 거래가 발생하는 거래쌍은 특정 시간에 매수 또는 매도 주문이 쏠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잠해지지만, 업비트와 같은 거래소에서는 매수-매도 주문이 하루 동안 균등하게 분포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는 실제 거래가 아닌 워시 트레이딩과 같은 허수 거래량이 상당수 존재함을 보여주는 패턴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코인메트릭스에서는 이런 식으로 주요 거래소들을 평가하여 '신뢰할 수 있는 거래량(Trusted Volume)'을 산출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전체 거래량에 대한 분석이 아닌 개별 거래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암호화폐 시장에 존재하는 가짜 거래량의 비율 자체를 추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특정 거래소가 전체 시장에 대한 수치를 크게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코인베이스나 크라켄 같은 건전한 거래소가 하루에 1억 달러의 거래량을 정직하게 보고하는 반면, 'Sketchy Exchange'라는 의심스러운 거래소가 같은 날 19억 달러의 대부분 가짜인 거래량을 보고한다면, 전체 거래량 중 약 95%가 가짜인 셈입니다.
코인메트릭스의 설명을 듣고 보니 '신뢰할 수 있는 거래량'을 평가하려는 이들의 시도가 나름 일리 있어 보였습니다. 실제로 암호화폐 시장에는 가짜 거래량이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니까요. 게다가 가짜 거래량은 거래소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에, 단순히 전체 시장의 가짜 거래량 비율을 추정하는 것보다는 개별 거래소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게 더 의미 있다는 점에도 동의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내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코인메트릭스가 제시한 기준이 한국 거래소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걸까요?
우선 매수/매도 주문 분포로만 가짜 거래량을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업비트 사용자 중에는 선물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현물 시장에서 단타매매에 주력하는 개인투자자들과 프로그램 매매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반면 해외 거래소에서는 선물 거래로 단기 매매나 프로그램 매매를 하고, 현물은 장기 보유하는 경우가 많겠죠. 거래 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는 환경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건 결과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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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규제 준수 항목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았습니다. 해외 업체들 중 상당수는 한국의 규제 현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투명성 측면에서도 전 세계 거래소 중 분기별 회계감사를 받고 상세한 재무제표를 공개하는 곳은 코인베이스와 업비트가 유일하며, 한국 거래소들은 특정금융정보법으로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으면서 분기별 재무재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은 평가로 보여 그 신뢰도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인메트릭스의 평가가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지만, 그들의 분석이 놓치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한국 거래소들도 API 품질과 같은 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거래소 평가에 있어 글로벌 기준과 로컬 기준 사이의 간극, 한국 블록체인 생태계가 글로벌 무대에서 제대로 인식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향후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젤라또: 올인원 RaaS
이드덴버 메인 행사장을 둘러보던 중, 저는 젤라또(Gelato)의 부스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젤라또는 스마트 컨트랙트 자동화, 오프체인 데이터 연결 등 이더리움 인프라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 온 프로젝트죠. 이들이 최근 롤업 솔루션까지 영역을 확장했다는 소식에 관심이 갔습니다.
부스에서 만난 젤라또팀은 자신들의 Rollup-as-a-Service(RaaS) 플랫폼이 기존 인프라 솔루션들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컨대 개발자들은 젤라를 통해 OP 스택·아비트럼 오빗과 같은 롤업 프레임워크를 활용하는 한편, 젤라또의 웹3 기능이나 릴레이 네트워크 등 기존 서비스를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롤업 체인과 인프라 서비스가 하나로 통합된 개발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죠.
이는 최근 에어드랍으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다이멘션이나 알트레이어어등 여타 RaaS 프로젝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보입니다. 젤라또는 RaaS 시장에 새롭게 뛰어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쌓아온 인프라 솔루션 운영 경험과 파트너 생태계를 기반으로 RaaS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젤라또팀과 이야기를 나누며, RaaS가 단순히 롤업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도구를 넘어,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 경험으로 진화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블록체인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이런 솔루션들의 발전이 필수적이겠죠. 앞으로도 젤라또를 비롯한 RaaS 프로젝트들이 어떤 성과를 낼지 기대가 되면서 모듈러 블록체인 생태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6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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