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000670)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010130)이 본사 분리 이전에 이어 CI(Corporate Identity) 변경까지 추진한다. 그간 명함이나 공식 홈페이지, 메일 서명, 계약서 등에 쓰이는 CI를 영풍과 공유해왔으나 이제 단독 CI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약 70년 동안 재계의 대표적인 '한 지붕 두 가족'이었던 두 회사는 배당 정책, 정관 변경, 계열사 경영권 등을 두고 분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물리적 분리에도 속도가 나는 모습이다.
3일 산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달 2일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공식 CI 변경안과 회사 명함 디자인 변경을 공지했다. 고려아연은 그동안 영풍그룹 차원에서 사용하는 CI를 기본적으로 사용하면서 2022년부터 미래 신사업 부문에 한해서만 자체 CI인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적용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든 영역에서 자체 CI만 사용한다.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영풍으로부터 벗어나 독립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행보다.
고려아연은 그동안 해외 원료를 공동 구매·영업할 때 사용하는 명함이나 계약서 등에는 전통적인 두 회사의 동업 정신을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영풍그룹 CI만을 썼다. 수십년 동안 글로벌 업계에서 쌓은 인지도와 두 회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 내부에서는 해외 바이어나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한 인지도 유지 등의 차원에서는 기존 CI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쌓인 심리적 불편함 해소와 회사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독자 CI만 사용하는 게 더 낫다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고려아연의 ‘홀로서기’ 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양측 분쟁의 핵심 고리로 떠오른 서린상사 경영권 확보 싸움도 계속될 전망이다. 서린상사는 고려아연과 영풍의 생산제품을 모두 유통하는 고려아연의 알짜 계열사지만 경영권은 영풍 측이 쥐고 있다. 고려아연은 더 이상 핵심 유통 사업을 영풍에 일임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서린상사 경영권을 찾아오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이사회 개최를 시도했지만 영풍 측의 반발에 무산됐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법원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임시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해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주주총회를 여는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사내 공지를 통해 명함 변경을 예고한 것은 맞는다. 그동안 2개의 CI를 혼용하면서 생겼던 불필요한 혼란을 없애기 위한 조치"라며 “홈페이지 등 다른 공식 채널에도 새 CI가 순차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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