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10월 미국 워싱턴DC에서 25개국 대표들이 경도의 기준인 ‘본초자오선’을 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국가 간 교류가 확대되는 시대를 맞아 시간 기준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회의에서는 영국의 그리니치자오선을 기준으로 삼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영국의 라이벌인 프랑스가 거세게 반발해 표결에 부쳐진 끝에 그리니치평균시(GMT)가 탄생했다. 이후 원자시계를 기반으로 한 ‘협정세계시(UTC)’가 도입됐으나 GMT와는 큰 차이가 없어 일상에서 혼용되고 있다.
140년이 흐른 지금 달의 표준시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오래전부터 ‘협정 달 시간(LTC)’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유럽의 우주 기관 관계자들이 수년 전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 정부가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에 2026년까지 달을 비롯한 다른 천체의 표준 시간 체계를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주요국 정부뿐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달 탐사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진행하는 상황에서 혼란을 줄이려면 통일된 시간 체계가 필요하다. 달에서 서로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위치정보시스템(GPS)을 사용하려면 기준 시간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달 표준시를 정하는 일은 과학적·정치적 이유로 쉽지 않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구의 24시간을 기준으로 달의 시간은 56㎲(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빠르게 흐른다”고 했다. 게다가 달은 하루의 길이가 29.5일이나 되고 밤이 14일간 계속된다. 지구의 시간 체계를 기준으로 달의 표준시를 정하는 일이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또 과거 지구 표준시를 정할 때처럼 국가 간 합의 과정에서 난항이 있을 수 있다. 달 시간의 기준 설정에서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우주 패권 전쟁의 전개 양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 표준시 제정은 인류의 우주 진출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주요국들이 달 선점 각축전을 벌이고 표준시까지 정하는 시대에 우리도 우주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분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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