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중국 과학기술 굴기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중국의 공세적 투자에 앞으로 한국이 기술력을 따라잡기는커녕 양국 간 대등한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한 초격차 단계까지 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비슷한 전략을 취하는 만큼 이 같은 열세 흐름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3대 게임체인저’로 꼽은 인공지능(AI)·양자·첨단바이오에서는 이미 중국에 추월을 허용했거나 뒤처질 상황에 처했다.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는 초소형 군집위성 1호와 ‘무궁화 6A호’ 등 2건의 우주 발사가 예정돼 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스타트업의 발사 건수를 더해도 한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중국은 정부와 민간을 합쳐 지난해 67회의 1.5배인 100회 발사할 계획이다. 달 뒷면의 시료 채취, 자체 우주정거장을 통한 유인 우주비행 임무가 대표적이다. 첫 민간 발사장 역시 올해 발사 임무를 수행한다.
유로컨설트에 따르면 2022년 정부 우주개발 예산은 중국이 119억 3500만 달러(16조 원)로 세계 2위이자 7억 2400만 달러(1조 원)인 한국을 크게 웃돌았다. 최근 정부가 같은 해 기준으로 발표한 기술 수준 평가에서 양국 간 ‘우주항공·해양’ 기술 격차는 6년이었다.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가장 컸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2010년 처음으로 중국에 0.1년 뒤처진 이래 대형 다단연소 사이클엔진, 우주 관측 센싱, 달 착륙·표면 탐사, 첨단 항공 가스터빈 엔진 부품 등 신기술 경쟁에서 밀려 꾸준히 격차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2022년 우주항공·해양을 포함한 전체 기술 수준 평가에서도 한국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했다. 특히 12대 전략기술 중에서는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수소 등 주력 산업기술을 제외하고 우주와 3대 게임체인저를 포함한 신기술 9종에서 중국에 밀렸다. 그중 아직 제대로 상용화하지 않아 초기 시장 선점이 관건인 양자기술은 우주항공·해양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격차이자 전략기술 평균(0.8년)을 크게 웃도는 3.4년이나 뒤처졌다. 향후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광대무변한 분야를 모두 이도 저도 아니게 챙기려 하면 결국 우주항공처럼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선택과 집중을 고민해야 하며 이를 통해 글로벌 밸류체인의 한 분야만 우리가 우위를 가져도 외교적으로 협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전략기술 중에서도 AI·양자·첨단바이오를 3대 게임체인저로 정하고 집중 지원을 약속했다. 다만 중국 역시 AI 굴기와 더불어 양자 굴기, 바이오 굴기를 내걸었다. 중국은 우선 정부와 민간을 합친 전체 연구개발(R&D) 투자가 2019년 2조 2100억 위안(413조 원)에서 지난해 3조 3000억 위안(616조 원)으로 연평균 12% 성장했다. 한국은 2019년 89조 원에서 2022년 113조 원으로 늘었다. 올해 정부 R&D 예산을 10% 늘린 중국과 달리 한국은 9.4% 줄여 민간에서 만회하지 않은 이상 격차 확대가 불가피하다.
중국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양자정보과학국가연구소를 짓는 데만 1000억 위안(19조 원)을 투입했고 2035년 중장기 목표를 통해 양자 R&D 예산을 매년 7% 이상 증액하기로 했다. 2003~2022년 전 세계 양자 특허출원은 미국(28%)보다 많은 37%의 비중을 차지했다.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위성 ‘묵자호’는 수천 ㎞ 통신이 가능하다.
전날 정부가 2030년까지 2조 1000억 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한 바이오 분야 역시 만만치 않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합성생물학에서 지난해 초 기준 세계 최고 10개 기관 중 9개를 보유했고 논문 점유율은 52%였다. 바이오 제조에서도 최고 기관 10개 중 6개와 26%의 논문 점유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1급 허가 신약은 전년(21건)보다 많은 40건이 승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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