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글로벌 차세대 통신 시장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2030년 400억 달러(약 54조 원) 규모로 펼쳐질 6세대(6G) 이동통신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국가적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중국은 가장 많은 6G 관련 특허를 확보한 상태다. 화웨이는 미국의 고강도 견제 속에서도 통신장비 시장 세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 경쟁력으로 중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5G(5세대)까지라고 본다”며 “파괴적 혁신 수준의 대응책이 없다면 6G 시장을 중국에 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시점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미래 통신 기술 분야에서 우위에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4일 영국 특허 매체 아이에이엠(IAM)과 미국 지적재산(IP) 전문 법인 돌세라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6G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글로벌 기업 20곳 중 9곳이 중국 기업이다.
전체 1위는 미국의 퀄컴(1189건)이 차지했지만 중국은 2위인 화웨이(909건)를 비롯해 BBK일렉트로닉스(378건), ZTE(187건), 샤오미(175건), 레노버(139건), 다탕모바일(109건), 동남대(105건) 등이 1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했다. 20개 기업이 보유한 특허 총 5938개 중 중국 기업은 36.1%(2145개)로 미국(29.9%·1776개)을 앞섰다. 한국은 삼성전자(853개)와 LG전자(302개)로 전체 3위에 올랐지만 중국과는 두 배 가까운 격차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앞세운 중국은 6G에서도 최대 격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6G 관련 특허가 가장 많이 출원된 기관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1804건)도, 미국특허청(USTPO·1786건)도 아닌 중국 국가지식산권국(SIPO·3018건)이다.
중국은 선점한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실증과 상용화 움직임에서도 가장 기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최대 이동통신 기업인 차이나모바일은 2월 세계 최초로 6G 서비스 테스트를 위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이르면 2028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6G 시장에서도 중국은 연내 5.5G 기술 상용화를 추진하는 등 선점을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통신 업계의 지배자 자리를 굳히려던 미국의 제재를 뚫고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중국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은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는 지난해 1년 만에 두 배 이상의 순이익을 내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화웨이의 지난해 매출은 7042억 위안(약 131조 원), 순이익은 870억 위안(약 16조 원)에 달했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1.3%로 여전히 1위다. 미국의 제재 속에 2020년 38.1%에 비해서는 하락했지만 같은 중국 기업인 ZTE가 이 기간 11.4%에서 13.9%로 점유율을 늘리면서 두 기업의 합산 통신장비 점유율은 45.2%로 전체 절반에 육박한다. 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22년 7.5%에서 지난해 6.1%로 1.4%포인트 감소하면서 중국 기업들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중국의 약진 속에 한국은 초비상이 걸렸다. 미국·중국 중심의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면서 ‘통신기술 선도국’ 위상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다. 2019년 세계 최초 5G 상용화로 기세를 올렸고 후속 투자 또한 꾸준히 집행해왔지만 단위가 다른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설 방법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정부와 국내 기업들은 미래 먹거리인 6G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다. 정부는 6G 기술의 국제 표준 특허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한편 6G 상용화 시기를 2030년에서 2028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이현진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통신장비 산업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갖고 있다”며 “미국이 6G 시대에서 통신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낮추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반사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제적인 투자 및 전략 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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