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하락세를 보였던 운전자 보험 손해율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후 자동차 운행 등 외부 활동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초 과열 양상을 보였던 보험사들의 출혈경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11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한 운전자 보험의 손해율은 57.8%로 전년(56.9%)보다 0.9%포인트 증가했다. 2019년(63.3%)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운전자 보험 손해율이 4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셈이다. 실제로 운전자 보험 손해율은 2020년 61.2%, 2021년 58.4%, 2022년 56.9%로 해마다 하락 추세를 보였다. 손해율이 상승하면서 지난해 운전자 보험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료도 처음으로 3조 원을 넘어섰다. 2019년 지급 보험료는 2조 5650억 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조 6274억 원으로 4년 만에 1조 원 이상 급증했다.
운전자 보험은 자동차로 사망 혹은 12대 중과실 사고를 낸 경우 발생하는 형사적·행정적 책임을 보상하는 상품으로 △교통사고 처리 지원금 △변호사 선임 비용 △운전자 부과 벌금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의무 가입 보험은 아니지만 2019년 ‘민식이법’ 시행과 2022년 횡단보도 우회전 일시 정지 단속 등이 담긴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 등을 계기로 가입이 급증했다.
운전자 보험 손해율의 상승은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면서 외부 활동이 늘어난 것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의 경우 교통사고 발생 규모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전년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던 만큼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보험 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보험사들이 운전자 보험 판매를 늘리기 위해 과열된 경쟁 상황이 운전자 보험 손해율 증가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자 보험 업계에서는 상해 등급이 14등급인 단순 타박상에도 70만~80만 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변호사 선임 비용 보장 경쟁이 일어나 일부 보험사는 변호사 선임 비용을 2억 원까지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는 등 출혈경쟁을 이어갔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운전자 보험 손해율 상승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 들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상승하는 등 교통사고 발생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2월 자동차보험 손해율(9개 손해보험사 기준)은 평균 86.1%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포인트 급증한 상황이다. 아울러 운전자 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보험사 간 경쟁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전망에 힘을 싣는다. 운전자 보험 계약 건수가 2022년 482만 건에서 지난해 451만 건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운전자 보험의 37회 차(3년 초과) 유지율은 51%로 다른 보험 상품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을 정도로 상품 갈아타기가 빈번하다. 다른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신규 가입자 수는 늘지 않는데 보험을 갈아타는 가입자가 늘고 있는 만큼 경쟁이 심화될 수 있는 환경인 것은 맞다”며 “아직까지는 운전자 보험이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품 판매 규모가 큰 만큼 미리 손해율 관리를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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