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필리핀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삼각 안보 동맹을 구축한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 맞서기 위해 필리핀의 본섬인 루손을 중심으로 미국 주도의 대대적인 글로벌 인프라 투자가 이뤄진다. 미중 패권 다툼의 전략적 요충지인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을 안보·경제 분야에서 적극 지원해 중국을 철저히 고립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첫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안보·경제 협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발표한다. 3국 정상회담에 앞서 미-필리핀 간에는 별도 정상회담이 열린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당국자는 이날 내외신 사전 브리핑에서 “필리핀이 중국으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3국은 남중국해에서 단결하겠다는 강력한 표현을 담은 공동성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끈끈해진 미일 동맹이 필리핀과 연대하는 것은 미중간의 남중국해 패권 다툼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가라는 판단에서다. 필리핀과 중국이 치열한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는 세계 해상 물동량의 30%가 지나는 핵심 해상로이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필리핀은 또한 바시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보고 있는데, 대만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군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는 지역이다.
NSC 고위 당국자는 이날 “이번 회담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최초의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인 필리핀 루손 회랑 인프라 프로젝트가 발표될 예정”이라면서 “이는 필리핀의 항구, 철도, 청정 에너지, 반도체 공급망 등 다양한 연결 수단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PGII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견제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서방 국가들을 모아 출범한 글로벌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로 2027년까지 미국과 주요7개국(G7)이 총 600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해 아세안 지역 등의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목표다. NSC 당국자는 필리핀이 첫 프로젝트임을 언급하며 “이번 회담을 통해 해저 케이블, 물류, 청정에너지 및 통신 분야 등에서 여러 미국 기업의 필리핀 신규 투자가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울러 필리핀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제도의 세컨드토머스암초에정박해 있는 시에라마드레호에도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이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힐 방침이다. 필리핀이영유권 확보를 위해 고의로 정박시킨 시에라마드레호에 대한 필리핀 측의 접근을 막기 위해 중국은 그간 물대포 공격 등을 강행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영유권 분쟁 지역에 상호 방위조약이 적용된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군사적 충돌까지 감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과 필리핀이 1951년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은 “외부의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양국이 협력해 서로 방위를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필리핀은 또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나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한미일 안보 협력 처럼 3국 간의 안보 동맹을 체계화·정례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다양한 소다자 협력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새로운 동맹 전략인 ‘격자형 안보 구조’의 일환이다. 이를 위해 호주를 포함한 4국 해군이 중국에 맞서 남중국해를 공동 순찰하고, 합동 훈련을 정례화하는 방안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아울러 필리핀과 일본은 양국 병력이 상대국에서 훈련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 접근권 협정’ 을 맺고 병력을 상호 순환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가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에 배치될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주도 군사 동맹은 크게 강화된다. 이밖에 미국과 필리핀의 군사정보 공유 협정 체결도 임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은 친중파였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물러난 후 2022년 마르코스 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미국과의 관계를 급속도로 개선했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 대부분이 자신의 영토로 주장하며 필리핀에 대해 점점 강압적인 행보를 보이자, 미일과 더 급속히 밀착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마르코스 대통령 집권 이후 필리핀과 협의를 통해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군 기지를 4곳에서 9곳으로 늘렸다. 바이든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을 고립시키고 주변국들의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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