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이 약 34년 만에 153엔대까지 급등하며 엔화 약세 흐름이 짙어지자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10일(현지 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53.24엔까지 치솟으며 1990년 6월 이후 3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3.5%를 기록해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하면서 환율 상승(엔화 가치 하락)을 부추겼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대로 상승하며 미일 금리 차가 부각되면서 엔화 매도, 달러 매수가 가속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도쿄외환시장에서도 엔·달러 환율은 153엔을 돌파했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17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서며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냈지만 인상 폭이 미미해 엔화 약세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물가가 여전히 뜨거운 것으로 나타나면서 금리 인하 시점이 당초 예상했던 6월에서 더 뒤로 밀릴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일본이 큰 폭의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는 한 지금의 금리 차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22년 9~10월 세 차례에 걸쳐 24년 만의 ‘엔 매수, 달러 매도’ 환율 개입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최고 환율이 10월 2차 개입 당시의 151.94엔으로 그동안 시장에서는 이에 가까운 152엔을 ‘개입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다.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을 훌쩍 넘기면서 일본 정부도 구두 개입에 나섰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11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과도한 움직임에는 모든 수단을 배제하지 않고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구두 견제에 나섰다.
다만 시장에서는 현시점에서 통화 당국이 개입해도 충분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는 가운데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해제 이후 당분간 금융 완화 기조를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다. 엔저의 근본 원인인 ‘미일 금리 차’라는 기본 조건이 시장 개입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마사후미 미즈호증권 수석외환전략가는 “미국 경제 지표의 상승이 계속될 가능성을 감안할 때 4~6월 엔 시세의 하한선이 155엔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환율 개입을 해도 2022년처럼 엔저를 억제하고 엔고 기조로 돌리는 효과는 부족할 것으로 보여 현재로서는 통화 당국이 어느 정도 개입에 의욕적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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