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결제 실적이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900조 원을 넘어섰다. 페이·QR과 같은 새로운 결제 수단이 확산하고 있지만 국내 가계와 기업이 100원을 소비할 때 80원 이상을 카드로 결제하는 등 카드의 ‘아성’은 깨지지 않는 모습이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7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카드)의 카드 결제 실적은 917조 6993억 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900조 원을 돌파했다. 카드 결제 실적은 개인·법인 회원이 체크·신용·직불·선불카드를 사용해 결제한 재화와 서비스를 모두 포함한다.
개별 카드사 기준으로는 신한카드가 190조 595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KB국민카드(164조 3235억 원), 현대카드(151조 2941억 원), 삼성카드(149조 2550억 원), 우리카드(92조 6025억 원), 롯데카드(90조 381억 원), 하나카드(79조 5907억 원)가 뒤를 이었다. 신한카드는 올해 신용카드 업계 최초로 연간 결제 실적이 200조 원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7조~8조 원가량 카드 결제 실적이 늘어왔기 때문이다.
소비 활동에서 카드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더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민간 최종 소비지출 785조 원 중 카드 결제 실적은 약 383조 원으로 48.7%를 차지했지만 2022년에는 1039조 원 중 863조 원이 카드로 결제돼 비중이 83%까지 상승했다. 국내 가계와 기업이 100원을 쓸 때 80원 이상을 카드로 결제한다는 뜻이다. 최근 5년간 민간 최종 소비지출 연평균 증가액(33조 원)보다 카드 구매 실적 연평균 증가액(53조 원)이 더 가팔랐던 점을 고려하면 작년 카드 결제 비중이 더 상승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두고 경기 침체에도 예상보다 소비가 위축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카드 결제 실적만 보면 전년(862조 9998억 원)보다 6.34% 증가했다. 반면 소비자물가가 오른 데 따른 착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3.6%였던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카드 결제 실적 증가율은 2.7%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2.7% 성장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에 달했던 2020년(1.1%)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한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900조 원을 돌파하기는 했지만 2022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증가율 자체는 절반 수준”이라며 “높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소비심리가 좋아졌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카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카드 업계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한 카드사 고위 임원은 “일단 카드로 소비한 뒤 결제를 하지 못해 미루는 ‘결제성 리볼빙’ 증가는 대출 연체 못지않은 관리 대상”이라며 “‘현금 없는 사회’가 더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페이 기업’들과의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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