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오피스텔 건물을 찾아갔다. 2층 사무실 문 앞에 서자 중년의 신사가 기자를 맞이했다. 퍼머 머리에 푸른 색상의 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홍재기(64) 시니어벤처협회 회장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직장인들이 조기 퇴직했다. 마침 정년에 도달한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맞물리며 2010년대 중반 중장년 은퇴자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했다. 숙련도가 높은 경험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이들이 사회에서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은 협회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이 2017년 6월 설립된 시니어벤처협회다.
협회는 벤처기업협회, 이노비즈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와 마찬가지로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사단법인이다. 이들과 시니어벤처협회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홍 회장은 “벤처기업협회는 벤처기업인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여성벤처협회가 여성벤처기업의 성장과 여성창업 활성화에 힘쓰듯이 저희는 시니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시니어 창업가나 시니어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다루는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게 저희의 주요 업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65세 이상 노년층을 일컫는 어르신의 다른 표현으로 시니어를 쓰기도 한다. 때문에 시니어벤처협회의 활동 역시 노년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이에 관해 홍 회장은 “절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저희에게 시니어는 주니어와 상대되는 개념이에요. 회사에는 주니어와 시니어 사원이 있고, 굳이 연령으로 구분한다면 40대 이상을 시니어로 볼 수 있지요. 새롭게 사업에 도전하거나 일자리를 찾으려는 중장년, 그러한 이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구상하는 청년까지 모두에게 시니어벤처협회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협회의 주요 회원들이 그렇듯이 홍 회장도 이제까지 많은 곳을 거치며 이력을 쌓아왔다. “첫 직장이 현대자동차였는데, 울산공장에 배치됐지요. 그러다가 금성알프스전자(현 LG이노텍)로 옮겨 10여 년을 다녔지요. 저는 디지털셋톱박스사업부서에 있었는데 회사가 이 사업을 접은 뒤 LG홈쇼핑(현 GS샵)으로 갔지요. 그런 뒤 2010년 GS울산방송 본부장 자리를 마지막으로 회사 생활을 마쳤네요.”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 막상 트랙에서 내려오니 막막함이 몰려왔다고 한다. 홍 회장은 “그때는 지금처럼 퇴직자 대상 교육이나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았는데 ‘여기가 끝은 아니다’라고 자신을 다독였다”며 “10분이라도 강의할 기회가 생기면 달려갔더니 소상공인 컨설팅, 강의, 책 집필 등의 일로 활동을 넓히게 됐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홍 회장은 시니어벤처협회를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설립 초기부터 힘을 보태게 된 것. 협회는 설립 초기 △산학협력 △시니어 기술창업 세미나 △시니어창업허브 ‘디딤터’ 개소 △퇴직자 전문 강사 양성과정 △전국 지회 개소 △창업 컨설팅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나갔다.
하지만 설립 4년차, 코로나19 확산으로 협회도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그동안 벌인 다양한 기획들을 지속하기 힘들어진 것. 협회의 활동은 쪼그라들었다. 구성원들은 구원투수로 홍 회장의 등판을 요청했다. 설립 초창기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협회의 활동에 관여해왔고, 재도약의 해법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이러한 염원을 받아 안고 홍 회장은 지난달 18일 열린 협회 정기총회에서 5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회장 직함에 어깨가 무거울 법도 하지만, 그는 기대감이 더 앞선다고 했다. “동창이나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왜 이렇게 달라졌냐고 해요. 예전에는 청바지도 안 입던 사람이었어요. 입으면 누가 쳐다보는 것 같고 그랬죠. 근데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변하더라고요.”
그의 마음가짐만큼 협회는 더욱 분주해질 예정이다. “올해 슬로건을 ‘다시 뛰는 시니어, 새로운 변혁의 아이콘’으로 정했습니다.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열심히 뛰어 협회를 정상궤도에 올려놔야죠.” 협회는 코로나19 이후 중단했던 정부지원 사업과 각종 컨설팅, 시니어강사 양성과정 등을 재개할 방침이다. 지자체, 노사발전재단 등과 협력해 일자리 플랫폼을 확대하는 등의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홍 협회장은 “스타트업 성장세가 대폭 꺾여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고령사회에서 시니어의 역할을 찾는 것이 협회 일 아니겠느냐”라며 “거버넌스 구축, 회원사 확보 등 신규 먹거리를 잘 준비해 시니어가 설 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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