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훈풍을 타고 잡은 메모리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 전방위로 투자를 단행하면서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도 열흘 새 국내외를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보조금 협상이 막 시작된 데다 최근 약 20조 원을 쏟아 붓는 대규모 공장 건설도 조만간 착수하는 만큼 곽 사장은 앞으로도 바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곽 사장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러셀 상원의회 빌딩에서 열린 ‘칩스 포 아메리카, 글로벌 성공을 위한 실행’ 행사에 연설자로 깜짝 등장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사의 대미 반도체 시설 투자가 미국 주 정부와 자사 모두 도움이 되는 ‘윈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 사장이 이 행사의 주요 연사로 나선 것은 주최 측 가운데 한 곳이 미국 퍼듀대인 것과 무관치 않다. SK하이닉스는 이달 초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2000억 원)를 들여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할 당시, 인근에 있는 이 대학과의 공동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사실도 함께 공개했다. 업계 대표로 마이크론, IBM 등 미국 기업들도 당시 행사에 참여했지만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해 파트너십을 맺은 SK하이닉스가 행사의 주요 발표를 맡게 된 이유다.
행사 장소가 미 의회와 연관된 상징적인 곳이라는 점은 물론 미국 반도체 산업의 재기를 논의하는 자리였던 만큼, 곽 사장의 행보는 향후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로부터 수령할 반도체 지원금 규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의 반도체 기반을 재건한다는 목표 아래 만들어진 칩스법에 따르면 보조금 규모는 단순 투자 규모 외에도 여러 정성적 요인이 고려된다. 미국 대학과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와 막 보조금 협상에 돌입한 상태다.
미국에 머물던 곽 사장의 발길과 시선은 곧장 다시 국내로 향했다. 연설 약 일주일 뒤 약 거액을 들여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을 만든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AI 메모리 호황에 힘입은 올 1분기 실적 발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는 이달 24일 청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D램 신규 생산을 위한 공장 M15X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공장 건설에만 약 5조 30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총 20조 원 이상을 들인다. 이달 말부터 바로 공사에 나서는 등 속도를 내 내년 11월 준공 후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신규 공장은 HBM 생산 확대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HBM은 AI 연산을 처리하는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신경처리장치(NPU)가 제대로 성능을 내기 위해 필요한 메모리로 대표적인 AI용 메모리로 거론된다. 이 회사의 올해 HBM 생산분의 경우 이미 계약이 끝날 정도로 높은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회사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 선제 투자에 나선 것이다. 곽 사장은 “M15X는 전세계에 AI 메모리를 공급하는 핵심 시설로 거듭나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며 “이번 투자가 회사를 넘어 국가경제의 미래에 보탬이 되는 큰 발걸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곽 사장은 당분간 국내외를 오가는 바쁜 행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투자에 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수령할 보조금 규모 협상이 막 시작돼 필요에 따라 언제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고 총 건설 비용 20조 원이 넘는 청주 생산 시설도 이달 말부터 곧 첫 삽을 뜨게 되는 만큼 국내에서도 챙겨야 할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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