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밀리고 엔화의 역대급 약세가 지속되면서 엔화와 미국 장기국채에 동시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베팅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지고 있다. 증권 업계는 당분간 엔화가 반등하기보다 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관련 상품에 접근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30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일본 증시에 상장된 ‘아이셰어즈 만기 20년 이상 미국 국채 엔화 헤지 ETF(티커명 2621)’는 올 들어 이달 26일까지 14.78%의 손실을 기록했다. 직전 거래일인 26일에는 주당 1176엔까지 떨어지면서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에 상장된 엔화 노출 미국 장기채 ETF들의 수익률도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말 상장한 KB자산운용의 ‘KBSTAR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 H) ETF’는 상장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은 끝에 이달 26일까지 14.92% 하락했다. 올해 누적 손실률은 15.45%로 비슷한 유형의 미국 장기국채 ETF인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13.48%)’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다. 올해 3월 중순 상장한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 ETF’ 역시 한 달 남짓한 기간 10.10%의 손실을 기록했다.
엔화 가격의 변동에 미국 장기채를 연동한 이 ETF들은 엔화 가치와 미국 장기국채 가격의 상승을 동시에 노리는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매수한 상품이다. 올 들어 일본 증시의 ‘아이셰어즈 만기 20년 이상 미국 국채 엔화 헤지 ETF’는 3억 5451만 달러(약 4882억 원)의 순매수세가 집중됐다. ‘KBSTAR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 H) ETF’와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 ETF’도 각각 1160억 원, 281억 원씩의 개인 순매수액을 기록했다.
엔화 연동 미국 장기국채 ETF들의 수익률이 지지부진한 것은 엔화와 미국 장기국채 가격이 모두 반등하기는커녕 연중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물가가 좀체 안정되지 못하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계속 뒤로 밀린 영향에 미국 국채금리가 치솟고 이러한 현상이 연쇄적으로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로 이어지면서 투자 포인트들이 모두 어긋난 상태다. 실제 이달 26일 기준 미국 국채 30년 금리는 연중 최고치인 4.82%를 기록했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34년 만에 처음으로 장중 160엔까지 하락하면서 약세를 이어갔다. 원·엔 환율 역시 오전 한때 올해 처음으로 100엔당 860원대까지 낮아졌다.
투자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국 장기국채와 엔화 모두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커 엔화 연동 미국 장기채 ETF들의 수익률이 추가로 악화될 여지가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엔화가 추세적인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행(BOJ)은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을 재확인했고 최근 엔화의 급격한 약세에 대해서도 환율이 통화정책의 직접적인 통제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엔화 약세의 장기화 가능성도 ‘0’이 아니라고 언급했다”며 “이미 달러당 155엔이라는 단기 저항선을 돌파해 상승세가 가속화된 이상 마땅한 다음 저항선을 찾을 때까지는 추가 상승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어 당분간 엔화의 추세적인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연말로 갈수록 달러인덱스가 하락하는 가운데 미일 금리 차도 점진적으로 축소되면서 엔·달러 환율은 상승 폭을 되돌려가고 BOJ가 4분기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엔화의 점진적 반등을 지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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