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분야 석학들이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직접 보조금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적 우위가 국제정치의 패권을 좌우하는 ‘기정학’ 시대에 주요국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한국도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싱크탱크 니어(NEAR)재단이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세계 반도체 전쟁, 한국은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포럼에 참가한 신창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미래 한국의 산업 정책 방향은 기술 투자 확대를 위한 세제 혜택 강화에 그쳐서는 안 되며 직접 보조금 투자로 확대해야 한다”며 “주요 선진국의 경우 이미 반도체 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식해 직접 보조금 지급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요국들은 반도체 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마련한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통해 2027년까지 반도체 산업에 총 527억 달러(약 71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최대 25%의 세액공제도 병행한다. 일본 정부도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을 수립하고 4조 엔(약 35조 원) 규모의 지원 예산을 확보한 상태다.
반면 한국은 세액공제를 통한 간접 지원에 그치고 있다.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해 반도체 설비투자 시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최대 15%(중소기업은 25%)를 세액공제해주고 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세계지역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반도체 산업에 있어 전방위적으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중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부터 추격할 것”이라며 “현재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로직반도체가 만들어지는 지역이 한국·대만으로 집중되지만 한국에 추가 투자가 없다면 향후 미국·아일랜드·독일·일본의 선단 공정에 대한 공격적 투자로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연원호 KIEP 경제안보팀장은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보조금 정책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장비와 소재, 팹리스(반도체 설계)에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보조금 문제가 용인 클러스터 건설을 위한 건설비 보조금을 지원해달라는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클러스터 건설을 위한 물, 전기, 사람 등 디테일을 국민들에게 설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조금을 달라고 하는 상황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이에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및 반도체융합공학부 교수는 "첨단 팹을 짓는 데 80% 가까이의 비용이 EUV 장비 등 고가 장비에 소요된다”며 “감가상각이 끝날 때까지 정부의 보조금으로 버티고 장비를 교체할 때 정부가 회수해가거나 투자한 만큼 이득을 나누는 방안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별 분업 구조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미국과 중국 양자 사이의 선택에 갇힐 것이 아니라 중층적인 협력 채널을 확보해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미국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라면서도 “중국은 한국 반도체의 주요 수출 시장이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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