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주가 내년 가동을 목표로 2개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인텔에 연방정부와 별도로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주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대규모로 지급한 것인데 △공장 건설 비용 6억 달러(약 8170억 원) △도로 및 인프라 구축용 5억 달러 △용수 시설 3억 달러 △세제 혜택 6억 5000만 달러 △직원 교육 1억 5000만 달러 등이다. 건물 재산세도 30년 동안 면제해주기로 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제공하는 최대 85억 달러의 보조금과 110억 달러의 대출 확약과는 별도다. 마이크론을 유치한 뉴욕주도 다양한 보조금을 준다.
미국은 지방정부까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부으면서 반도체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만 나 홀로 뒤처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자 직접 지원 카드는 뒤로한 채 저리 대출을 검토하고 있어 방향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의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3일 “첨단산업발전기금 같은 것을 조성해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기업들이 대규모 (시설 투자)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40조 원 규모로 조성돼 아시아나와 제주항공 등에 제공한 기간산업안정화기금의 새 버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소 1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산업은행이 기금 조성과 관리를 책임지는 방안이 아이디어로 거론된다. 재원은 기금채 발행과 정부 현물출자, 기안기금 전출 등이 두루 논의되고 있다. 지원 대상은 반도체와 2차전지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된 4개 업종과 향후 지정될 미래차·로봇·원전·방산까지 총망라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미 올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 2조 원어치를 현물출자한 상황에서 추가로 출자에 나설 경우 정치권의 반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대해 실망감이 높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 정부 입장과 정치 상황을 보면 보조금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며 “이대로라면 메모리반도체 생산 시설도 해외로 나갈 수 있다. 미국만 해도 대규모 보조금과 용수·전력·도로 등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주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대출 같은 간접 지원의 효용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당장 미국에서 64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는 연방정부의 대출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수십조 원의 돈을 빌리며 무차입 경영 기조가 깨졌지만 올해 실적이 회복되면서 더 이상 외부 차입의 필요성이 없어진 까닭이다. 첨단기금의 선례 격인 기안기금 역시 평판 리스크를 우려한 기업들의 외면 속에 누적 대출액이 1조 원 에도 못미친다. 신창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첨단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미국·중국·대만·일본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국가 차원의 투자 및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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