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닷컴과 재무적 투자자(FI) 간 1조원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갈등을 계기로 유통업계의 총거래액(GMV) 과다 계상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e커머스 플랫폼의 가치 측정 도구로 사용되는 GMV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데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GMV는 Gross Merchandise Volume의 약자로 주로 오픈마켓 e커머스 플랫폼의 기업 가치를 측정하는데 사용된다.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e커머스 업체들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투자업계서도 일상적인 용어가 됐다. 쿠팡과 컬리처럼 직매입을 하는 업체들은 매출액이 전체 거래액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오픈마켓인 네이버, G마켓 등은 매출액이 거래 수수료만 포함하고 있어 GMV가 사용된다.
문제는 e커머스 업체들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GMV를 부풀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SSG닷컴과 FI간 갈등에서도 SSG닷컴이 GMV 관련 조건을 맞추기 위해 상품권 판매를 중복 처리해 과당 계상했다고 FI측은 주장한다. 이외에도 라이브 커머스업체 B사와 숏폼 플랫폼 H사가 GMV 성장세로 주목을 받았지만 파트너사에 정산 대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또 패션 플랫폼 C사가 GMV를 높여 발표했다가 이후 정정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다. 한 e커머스 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투자를 받기 위해 금액적 성과를 달성했다고 하면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GMV 외에 e커머스 플랫폼의 가치를 측정할 마땅한 도구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통상적인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사용되는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의 경우 사업 초기에 막대한 투자로 유통망을 조직해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e커머스 업계에서는 당장 달성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유통계에서는 영업손실이 발생하더라도 GMV를 최대한 높게 끌어올리는 것이 플랫폼 가치 판단에 절대적인 기준이 돼 왔다.
다만 경쟁 심화 및 경기 둔화로 e커머스 투자 열기가 가라 앉으면서 GMV를 제대로 공개·검증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와 무신사는 매출액·영업이익처럼 의무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GMV를 정기 공시나 IR 자료에 담고 있다. 공시는 법적 구속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밸류에이션 분석을 위해 자체적으로 추정한 GMV를 보고서에 담고 있는데 산정 모델이 향후 점차적으로 정교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SSG닷컴과 FI간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SSG닷컴은 앞서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로부터 1조원을 투자 받으면서 지분 30%를 넘겼다. 당시 계약에 SSG닷컴이 2023년 기준 GMV 약 5조 2000억원을 달성하지 못하면 FI가 풋옵션을 행사하는 내용이 들어갔는데 해당 요건의 충족 여부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