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앞으로 재정 운용은 민생을 더 세심하게 챙기고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저출생 극복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민생 살리기와 지속 가능한 미래 대비에 중점 투자하겠다”고 했다. 성장의 토대인 연구개발(R&D)을 키우기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폐지하고 투자 규모도 대폭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할 일이 태산이지만 재정을 살펴볼 때면 빚만 잔뜩 물려받은 소년 가장 같이 답답한 심정”이라며 재원이 한정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재정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예산편성을 앞두고 국무총리, 국무위원, 여당 인사 등이 참석해 재정 운용 방향을 논의하는 회의체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면서 “비효율적인 부분은 과감하게 줄이고 필요한 곳에는 제대로 써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자”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허리띠는 졸라매지만 △체감할 수 있는 민생경제 △저출생 △서민·중산층 중심 시대 △약자 복지에는 과감하게 재정을 풀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저출생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은 “2006년 이후 370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오히려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실질적 출산율 제고를 위해 재정 사업의 구조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예산) 전달 체계와 집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부처 간 칸막이로 중복 낭비되는 예산을 꼼꼼히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재정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며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야만 계층 이동 사다리가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집권 3년 차를 맞아 강조한 예산 운용 기조는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저출생 대응과 주요 연구개발(R&D) 프로젝트, 반도체 지원 등 중점 사업에 초점을 맞추되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50% 초중반 이내로 유지해 정책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이날 반복해서 건전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 재정의 건전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지난달 말에는 우리 국가채무가 단기간에 빠르게 증가해 50%를 초과했다고 언급했다”며 “우리 재정이 국가신용등급 평가에 있어 더 이상 플러스 요인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또 “지난 정부 5년 동안 정부 예산이 200조 이상 늘었고 이 때문에 채무 누적액도 같은 기간 연간 GDP 대비 36%에서 49%로 증가했다”며 “이로 인해 각 부처가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저출생의 경우도 단순 현금 살포로 대응하기보다는 면밀한 성과 평가를 통해 정책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도 이날 세종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을 방문해 “저출생·고령화 관련 정책 중 사회·경제적 영향이나 예산 규모가 큰 정책들에 대해 심층 평가를 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 초격차 확보에도 지원을 집중한다. 앞서 기재부가 민관 공동 출자 펀드, 산업은행 대출, 재정 지원을 총동원해 반도체 산업에 10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 지방 교육 재정 혁신 역시 주요 정책 과제로 추진된다. 내국세의 20.79%로 고정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주요 개편 대상으로 꼽힌다.
이날 재정전략회의에서는 의료 개혁 지원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의료 개혁 5대 재정사업은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지역의료 발전기금 신설 △필수의료 재정 지원 대폭 확대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한 보상 재원 확충 △필수의료 R&D 예산 대폭 확대다. 윤 대통령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확충하고 어르신을 비롯한 취약 계층에는 기초연금과 생계급여를 계속 늘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8년까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50% 초중반 수준에서 관리할 계획이다. 2023년 국가채무비율은 50.4%까지 치솟으며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처별 구조조정 실적에 따라 예산상 인센티브를 부여할 것”이라고 했다. 최 부총리는 예산이 의무지출을 중심으로 늘고 있어 신규 사업에 예산을 늘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내년도 예산안과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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