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전세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전세대출은 통상 대출 기간에 이자만 내면 되기 때문에 연체가 늘어나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전세사기 피해, 깡통전세 전락 등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주거 안정을 위해 전세대출 심사 때 빚 상환 능력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있는 점이 부실을 키우는 원인일 수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24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 따르면 올 1분기 전세자금 대출 연체액(1개월 미납 시 원금)은 412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7%(919억 원)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체율도 0.295%에서 0.387%로 0.092%포인트 올랐다.
전세대출은 만기까지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상환 부담이 낮고 주거와 직결되는 문제라 연체율이 낮은 상품인데도 1년 만에 1000억 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 등 악재가 겹치며 이자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변동금리가 대다수인 전세 대출의 특성상 충분히 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차주들에게는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는 것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거 안정을 이유로 전세대출 심사가 느슨하게 이뤄지는 점도 부실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세대출은 재직 여부 등 최소 조건만 충족하면 DSR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상품인 만큼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차주의 조건이나 한도가 까다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서 대출금의 최대 100%를 보증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대출을 내주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서민 주거 안정 대책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 교수는 “전세대출을 건전성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은행들만 쉽게 이자이익을 거두고 있다”며 “공적 보증의 경우 사회가 개인의 부담을 나눠서 지는 것인 만큼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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