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저의 지도교수도 이 상을 받았습니다. 선배 과학자들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처럼 저 역시 후배들이 훌륭히 성장할 수 있도록 후학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민교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교수)
인공지능(AI)·첨단바이오·양자 등 신기술을 두고 선점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들이 나왔다. 특히 로봇·센서 분야에서 신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난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 성과들이 눈에 띄었다. 관련 공로로 28일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시상식에 모인 수상자들은 연구 고도화와 후학 양성을 통해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서울경제신문과 한국연구재단이 공동 주관하며 1997년부터 매년 과학기술 발전 공로를 남긴 과학기술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날 시상식은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4’ 개막일에 맞춰 상반기 수상자 6명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광덕 서울경제신문 부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주요국들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며 “바이오·로봇·나노과학 등 분야를 망라한 이번 성과가 후속 연구로 이어져 더 큰 열매로 자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축사에 나선 이창윤 과기정통부 차관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말을 인용해 “수상자들께서 가르치는 제자들이 더 탁월한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시라”고 당부했다. 후대의 연구 자산이 될 성과를 꾸준히 축적해달라는 취지다.
이혁모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은 환영사에서 “27년간 321명의 우수 연구자를 발굴해 격려했으며 일반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굴지의 상으로 발전해왔다”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정부와 한국연구재단도 이 같은 연구 지원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1월 수상자인 김태일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거미를 모방해 고정밀 생체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바이오 전자소자를 개발했다. 바이오 전자소자는 생체 신호를 정밀 측정해야 하지만 신체 움직임은 진동을 일으켜 신호 측정을 방해한다. 연구팀은 자연에서 진동을 제어하는 거미 다리를 모방해 문제를 해결했다. 김태일 교수는 “긴 싸움이었는데 같이 연구한 학생들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2월에는 인간처럼 촉각을 느끼는 대면적 로봇 피부를 개발한 김정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수상했다. AI 신경망을 장착해 누르고 쓰다듬고 두드리는 식의 촉각을 구분할 수 있고 찢어지거나 베여도 회복하는 기능을 갖췄다. 김정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부드러운 피부를 갖고 털도 나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지면 일상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상은 종양에만 정확히 전달돼 항암 치료 효과를 높여주는 나노 입자를 개발한 김대덕 서울대 제약학과 교수에게 주어졌다. 입자 크기가 작아 제 역할을 다하면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된다. 김대덕 교수는 “제약 업계에 응용해 사업화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4월 수상자인 손동희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피부에 붙이기만 해도 보행 재활을 도울 수 있는 패치(스티커)형 바이오 전자소자를 개발했다. 손상된 신경 및 근육과 생체 신호를 주고받으며 기능을 되살리는 원리로 실험 과정에서 잘 못 걷던 쥐가 3일 만에 정상적인 보행이 가능해졌다. 손 교수는 “난치성 신경 질환은 진단과 치료 연구가 쉽지 않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동료들과 지속적으로 도전하겠다”고 했다.
5월 상은 19년 전 수상자인 이용희 KAIST 명예교수의 제자 서민교 교수가 받았다. 그는 빛반사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광학적 무(無)반사’를 실험적으로 구현해냄으로써 미세한 빛과 물질 간 상호작용을 다루는 광학 연구의 발전에 기여했다. 양자센서 같은 첨단 소자를 개발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6월 수상자는 미세플라스틱의 전 지구적 순환을 규명하고 이로 인해 청정 지역으로 알려진 북극에 상당량의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돼 있음을 밝혀낸 김승규 인천대 해양학과 교수다. 새로운 환경오염원이 된 미세플라스틱 관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승규 교수는 “세계 최초의 발견인 이번 연구 성과를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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