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재정환율 기준)은 이날 100엔당 866.09원에 거래돼 전날(869.69원)보다 3.60원 하락했다.
이날 원·엔 환율은 한때 100엔당 864원 후반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원·엔 환율은 이달 중순 처음으로 860원대를 기록한 뒤 870원 안팎에서 시세를 형성해왔다.
현재 원·엔 환율은 2000년대 중후반 원고엔저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07년 당시 원·엔 환율은 100엔당 760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연말에는 830원대로 반등했다. 올 초만 해도 900원을 웃돌던 원·엔 환율은 860원까지도 밀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2000년대 중후반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다른 나라 사이의 금리 격차가 두드러지며 엔저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어서다.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달러·엔 환율을 간접 비교해 계산하는 재정환율이다.
달러·엔 환율로 보면 엔화는 달러당 156엔 수준에서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140엔 선에서 거래되던 것에 비해 약세가 두드러진다. 올 4월 말에는 160.17엔까지 치솟으며 1990년 이후 처음으로 160엔을 돌파했다. 일본은행이 올 3월 금리를 17년 만에 인상하며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냈지만 여전히 미국(연 5.25~5.5%)보다 기준금리 수준(연 0~0.1%)이 크게 낮아 엔화 약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엔화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인 미국의 통화정책 피벗(전환) 시점도 계속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9월께로 미뤄지는 분위기라 강달러가 더 오래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며 “그렇다면 달러·엔 환율도 좀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이 엔화 가치 방향을 바꿀 핵심 변수라는 뜻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제일 중요한 것은 각국의 통화정책 방향 전환 시점”이라며 “시장에서 예상하듯 3분기 중 일본은행이 추가적인 금리 인상 등을 추진할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일본 통화 당국이 달러당 160엔 선은 무조건 사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 전문위원은 “올 4월 말에도 달러·엔 환율이 160엔 선까지 오르자 일본 당국이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선 바 있다”며 “160엔 정도가 상방으로 열어둘 수 있는 선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도 “달러·엔 환율이 160엔을 넘는다면 일본이 양적 축소, 구두 발언, 추가적인 금리 인상 단행 등 어떻게든 정책적 대응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본 외환 당국이 최근 지나치게 자주 구두 개입에 나서 시장 개입의 약발이 기존보다 약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제는 엔화 약세가 한국의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후반 국내 재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원고엔저’였다. 일본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에 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잃은 국내 수출 기업들은 경영난을 겪어야 했다. 디스플레이·휴대폰 등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품목의 경우 그 타격이 더 심각했다.
실제로 자동차·철강·기계 등 한국과 경합도가 높은 부문이 적지 않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일 수출 경합도가 높은 품목은 전기·전자제품(0.653), 자동차 및 부품(0.653), 선박(0.582) 등이었다. 수출 경합도가 1에 가까울수록 양국 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2020년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을 보면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69.2로 미국(68.5)과 독일(60.3), 중국(56)에 비해서도 높다. 엔저가 지속될 경우 일본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한국의 자동차·조선 수출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추세적으로 일본과의 수출 경쟁도가 덜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의윤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일 간 총수출 경합도는 2016년 0.486에서 2023년 0.476으로 떨어졌다”며 “비록 2023년 자동차와 석유제품의 경합도가 2021년에 비해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 기간 두 제품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높은 수출액 증가율을 보이는 등 엔저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만큼 크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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