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내부에서 한국의 실질 중립금리가 -0.2~1.3% 범위에 있다는 분석이 처음 나왔다. 중립금리는 물가를 자극하지도, 억제하지도 않는 금리로 통화정책의 근간이 된다.
도경탁 한은 통화정책국 과장은 31일 열린 ‘BOK 국제 콘퍼런스’ 특별 세션에서 한국의 실질 중립금리 추정치를 이같이 밝혔다.
도 과장은 이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중립금리 추정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팬데믹 이후에는 소폭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도 과장이 추정한 중립금리는 △2000년 1분기 1.4~3.1% △2020년 1분기 -1.1~0.5% △2024년 1분기 -0.2~1.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 당국은 중립금리를 기준선으로 물가를 잡을 때는 금리를 더 올린다. 중립금리는 추정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크지만 기준금리를 정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당국의 기준금리를 알면 거꾸로 중앙은행의 금리 경로를 추정할 수도 있다. 도 과장은 “중립금리는 장단기 여부와 추정 방식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상당히 크다”며 “글로벌 경제 환경이 변화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잠재 성장 제고 여부가 향후 중립금리에 대한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계의 관심도 코로나19 이후 상승한 중립금리가 저출생·고령화로 다시 떨어질지, 아니면 높은 수준을 유지할지에 쏠려 있다.
한은은 총 네 가지 모델을 활용해 나온 수치를 범위로 제시했다. 한은 통화정책국 담당자가 중립금리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한은은 시장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그동안 중립금리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콘퍼런스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주요 내용이 알려졌다. 이는 이창용 총재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의 실질 중립금리에 한은의 물가 목표치(2%)를 더하면 1.8~3.3%가 된다. 평균이 2.5~2.6% 정도이므로 현 기준금리 3.5%는 제약적(물가 억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제약적이라는 것과 기준금리 변경은 별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실질 중립금리는 지난해 4분기 기준 0.73%다. 현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금리는 5.25~5.50%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금의 정책금리는 제약적인 게 맞다”면서도 “문제는 시장금리로 향후 인플레이션과 성장률 추이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와 관련해 “공개한 중립금리 수치는 한은의 기관 전망치와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해당 모형은 선행 연구를 활용해 우리나라 중립금리를 추정한 것”이라며 “한은은 이 수치를 중립금리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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