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시중은행이 미리 정한 이자율로 자금을 빌리려는 기업과 체결한 이자율 선도 파생상품 계약 규모가 1년 새 56%나 급증했다.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 금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업들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금리가 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어 기업들의 수요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 1분기 말 이자율 선도 파생상품 계약 금액은 15조 382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6%(5조 5281억 원)나 늘었다.
이자율 선도 파생상품은 미리 약정한 이자율로 향후 특정 시점에 채권 등 자금을 차입하는 계약이다. 차입 시장의 금리 변동과 무관하게 사전에 계약한 금리가 적용돼 이자율 상승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이자율 관련 장외 파생상품 거래가 늘었다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자율 선도 파생상품 계약 금액은 4개 은행에서 모두 늘었다. 하나은행이 6조 6352억 원으로 77% 늘어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3조 9400억 원, 4조 2678억 원으로 47%, 24.5% 증가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3분기까지 이자율 선도 파생상품 거래를 취급하지 않았으나 올 1분기 5391억 규모로 취급했다.
기업들이 미래에 조달할 자금의 금리를 고정시키려는 것은 글로벌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가자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들의 매수 수요가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대출은 변동금리로 이뤄지는데 이자율 선도 거래 같은 파생 거래를 통해 시장에서 고정금리로 교환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금리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장단기 사업 계획을 세우기 훨씬 수월하다”고 전했다.
새로운 보험 규제 체제 도입도 영향을 미쳤다. 은행 이자율 선도 파생상품 거래의 대부분을 보험사가 차지했다. 지난해부터 새 보험 회계 기준인 IFRS17이 시행되며 이자율 선도 거래를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를 조정하는 수단으로 인정하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IFRS17 시행에 따라 보험사들이 자산 듀레이션을 늘리기 위해 거래처를 찾으면서 시중은행들이 FRA 거래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하반기에는 파생상품 거래로 금리 리스크를 헤지하는 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금리가 내려가면 변동금리가 오히려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4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표 둔화가 확인되면서 미 연준의 긴축 기조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하락기에 근접했다는 인식이 커지며 금리를 고정하려는 수요가 조금씩 줄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파생거래 시장에서 금리를 고정하는 것보다 시장금리를 적용받는 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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