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고등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일했다고 해도 중장년기에 조기 퇴직할 경우 저임금·저숙련 직무로 이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경직적 연공서열제가 이 같은 중장년층의 경력 단절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직무 분석을 통해 살펴본 중장년 노동시장의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13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김지연 KDI 연구위원은 “취업자들은 청년기에 자료 분석이나 조직 관리 등 전문적 업무를 주로 수행하다가 중년기 이후 육체적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같은 현상은 중장년 취업자가 생애 주 직장을 떠나 새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겪는 직무 단절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KDI가 1998~2021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해 직업별 직무 성향과 취업자 연령 간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나이가 들수록 ‘분석·사회·서비스’ 직무에 종사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반복·신체’ 업무에 근무하는 경향은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남성 중 연구·경영지원 등 ‘분석’ 직무에 종사하는 성향은 30대까지 증가세를 보이다가 40대부터 감소세로 돌아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용접원이나 자동차 정비원 등 ‘반복’ 직무에 근무하는 경향은 40대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여성의 경우 출산에 따른 경력 단절로 인해 30대부터 분석 직무에 일하는 경향이 줄었다.
KDI는 이처럼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단순 직무에 일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원인을 직무 단절에서 찾았다. 실직·조기퇴직한 중장년층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경우 대체로 저숙련·저임금 일자리에 재취업하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분석’ 업무에 종사하다 이직한 남성 근로자의 경우 50대부터 ‘분석’ 직무에 대한 성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여성은 30대때부터 이 같은 성향이 급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 연구위원은 “나이가 들수록 업무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면서도 “개인 생산성과 관련된 변수를 통제해 도출한 결과임을 고려할 때 단지 생산성 차이에 기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KDI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분석 업무 종사자는 50대 이후에도 직무 성향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생산성을 중시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이 매우 높은 국가로 꼽힌다.
이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원인은 연공서열제라는 것이 KDI의 진단이다. 김 연구위원은 “중장년층의 직무 단절과 조기 퇴직은 이들에 대한 낮은 노동수요라는 공통분모에 기인한다”이라며 “이를 낮추는 대표적인 요소는 중장년층 고용비용을 과도하게 높이는 과도한 연공서열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직기간보단 직무의 내용과 성과를 중시하는 직무급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KDI 측 제언이다.
노동시장 구조에 대한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정년 연장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중장년층 고용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법정 정년 이전에 정년퇴직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년 연장의 실효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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