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적이고 재빨랐습니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 이야기입니다. 성 실장은 지난 16일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초고가 1주택자들과 보유 주택의 가액 총합이 아주 고액인 경우 세금을 내게 하고, 일반적인 주택이나 다주택자라 하더라도 보유 주택의 가액 총합이 아주 높지 않은 경우 종부세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6억 원, 7억 원, 8억 원짜리 집을 세 채 갖고 있으면 종부세가 400여만 원 나오지만, 21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1세대 1주택자는 130만 원 정도의 세금을 낸다”며 집값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기도 했습니다.
성태윤 실장, 일요일 오전 방송서 종부세·상속세 수치 나열
상속세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대주주 할증을 제외하더라도 최고 세율이 50%로 되어 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6.1% 내외로 추산된다”며 “최대한 30% 내외까지 일단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종부세·상속세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개편 주장은 여권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된 문제인 만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일요일 오전 대통령정책실장이 방송에 출연해 수치까지 거론하며 세제개편의 불을 지핀 것은 사실입니다.
공교롭게 다음날인 1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세종청사에서 두번째 월례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기재부가 준비한 이른바 ‘야마꺼리’는 유류세 인하 재연장이었지만 기자들은 전날 성 실장 발언에 더 집중했습니다.
“(성 실장 입장에)기재부 고민은 무엇인가. 용산에서 불쑥 발표한건가. 교감이 있었나. 세법개정안에 상속세·종부세 개편안까지 들어가나. 상속세·종부세 개편 검토 과정에서 어떤 계획이 있나” 질문이 계속됐지만 최 부총리는 확답을 피했습니다. 성 실장의 발언을 “다양한, 검토 가능한 대안 중 하나”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성에 공감한다”고 밝힌 정도였습니다.
최상목 “경제사령탑은 기획재정부이고 부총리다”
답변을 거듭 피하자 “경제 사령탑이 부총리인가. 대통령실과 부총리실의 쌍두마차 체제인가”라는 질문이 나왔고, 최 부총리는 “경제정책 사령탑은 ‘기획재정부’이고 부총리”라며 구체적인 세제 개편 사항은 기재부가 맡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성 실장 발언에 내심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 것인데 방향성에는 공감한다고 하니 대통령실과 기재부간 엇박자라고 단정하기엔 애매한 면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한 언론은 ‘헷갈리는’이라는 제목으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실과 기재부간 세제개편에 온도차가 느껴집니다. 온도차의 배경은 세제개편이 내년 예산안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우선 꼽힙니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2023년도 예산안 통과시 야당이 반발한 것은 법인세 인하 등 세법개정안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세법개정안이 야당에 빌미를 잡힐 경우 예산안 통과 자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2023년도 예산을 논의하는 2022년도 정기국회에서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는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지정해야 할 세법 심사의 마감 기한(11월 30일)까지 제대로 된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상속세 등 현 정부 첫 세제개편안을 건건이 반대하면서 야당발 예산안이 등장하는 등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법인세 전 구간 1%포인트 인하안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예산안은 2014년 국회선진화법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회기를 넘긴 데다 법정시한(12월 2일)을 21일이나 넘겨 겨우 통과됐습니다. 이 같은 경험이 일종의 학습효과로 작용해 지난해 기재부는 여야 이견이 큰 다주택자의 양도세 개편이나 상속세 전면 개편도 미룬 채 올해 총선만 바라보며 세제개편안을 최소화했습니다.
‘세제개편에 예산발목 잡힐라’…정중동 모드
하지만 총선은 아시는 것처럼 여소야대 상황이 더 극심한 결과를 맞았습니다. 현재 세법개정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해야할 일, 여당이 할 일, 야당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국회 문턱 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때문에 안그래도 ‘부자감세’ 프레임으로 현 정부를 공격하는 야당의 기세를 기재부가 자극할리는 없어보입니다.
최 부총리가 상속세 개편의 최우선 고려사항을 “사회적 공감대”라고 밝힌 것도 같은 배경에서입니다. 각계 각층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세제개편과 예산을 다듬어 야당을 설득하겠다는 말그대로 ‘정중동’모드를 유지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변수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야당이 뜻밖에 상속세와 종부세 개편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우클릭을 시작한 것입니다. 야당 내부적으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응하며 여당과 전면전을 치르면서도 정책면에서는 중도층을 껴안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개편 주장이 야당에서도 자꾸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대통령실이 다급해졌다는 전언입니다.
뜻밖에 野 중도확장 전략에 급해진 대통령실
좀처럼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야당이 종부세·상속세 개편의 주도권까지 쥘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우선 여당 지지층 결집이 필요하다고 보고 상속세와 종부세 완화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실제로 이례적으로 성 실장이 일요일 아침 방송으로 세제개편 이슈를 꺼내 들면서 야당은 난처해졌습니다. 정기국회까지 중도확장에 속도조절을 하려다가 선수를 대통령실에 빼앗긴 셈이 된 겁니다. 당분간 야당에서 세제개편 주장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졌습니다. 전략적으로 성 실장의 발언이 통한 것입니다.
물론 세제개편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 하자는 게 윤 대통령의 속마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8일 윤재옥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포함한 여당 전임 원내대표단을 관저로 초대해 만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야당을 상대하기 힘들지만 나라를 구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극복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말 그대로 여야 모두 전쟁 직전의 상황입니다. 윤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 여당과 야당의 무한대결이 이어갈 경우 상속세율 30%개편은 커녕 경제는 난장판이 되고 피해는 모두 국민들이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최 부총리 발언대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야당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설득 가능한 논리와 여론을 만드는 섬세함이 필요할 때입니다. 지지층 결집하자고 성급하게 숫자를 나열할 때는 더더욱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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