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 기업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유족에게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다. 1심에서는 청구권 소명시효가 지났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2심 법원은 강제 동원 피해자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2-2부(김현미·조휴옥·성지호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강제동원으로 숨진 고(故) 박모씨 유족이 일본 건설사 쿠마가이 구미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에서 “유족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승패가 엇갈린 쟁점은 손해배상 청구권 소명시효였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났거나,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에 따라 소멸한다.
1심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처음 인정한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이후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한 만큼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소멸시효 기준을 2012년이 아닌 2018년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멸시효 계산 기준을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아닌 이 판결이 재상고를 통해 확정된 2018년으로 봤다. 이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다고 해석한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은 국내외에서 논란이 계속돼 일본 기업들도 배상을 거부했고,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도 없었다”며 “사건 당사자들의 권리가 확정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후 구제 가능성이 확실해졌고 원고는 판결로부터 3년이 지나기 전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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