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문턱을 높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 시기를 두 달 늦춰 9월부터 시행한다. 빚으로 빚을 막기도 벅찬 한계 자영업자가 좀처럼 줄지 않자 부채 관리 계획을 시행 1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돌연 바꾼 것이다. 부채 시한폭탄을 일시적으로 봉합했으나 가계대출이 최근 급등세를 보이고 있어 부실 뇌관만 더 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 도입 시기를 7월에서 9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DSR은 대출받은 사람이 한 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몫이다. 상환 능력 내에서 대출을 받도록 마련된 규제로 현재 은행권 대출에 40%(비은행권 50%)의 DSR이 적용된다.
스트레스 DSR은 나중에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해 대출한도를 더 죄는 규제로 2월 도입됐다. 당국은 당초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스트레스 DSR을 우선 적용(1단계)하고 7월부터 은행권 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담대로 관리 대상을 넓힐 계획(2단계)이었다. 하지만 2단계 시행까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계획을 갑자기 수정한 것이다.
금융 당국은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을 연기한 것은 2금융권을 이용하는 취약 차주의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단계 규제가 시행되면 2금융권 차주 중 약 15%는 대출을 전보다 줄여야 한다. 이들 대부분은 은행권에서 DSR 한도를 채우고 2금융권으로 넘어온 자영업자들로 상환 여력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서민·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범정부 자영업자 지원 대책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당국이 자영업자들의 부채 문제에 대해 시간을 끄는 사이 취약 차주의 부실은 되레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로 2012년 12월(0.64%)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빚 상환 시기를 늦추는 식으로 대처해왔지만 자영업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버텨도 살아남기 힘든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지원하는 식의 구조조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 0.54%
2021년 말보다 3배 넘게 급등
다중채무자가 대출자 절반 넘어
추가적 부실 위험 징후도 뚜렷
폐업 지원 등 근본적 대책 절실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전월 대비 6조 원 늘어 7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확대되자 금융위원회가 이달 12일 5대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임원을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열었다. 금융위는 “대출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가계부채를 일관되게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회의 뒤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25일 금융위는 가계대출 문턱을 높이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을 돌연 두 달 연기한다고 밝혔다. 당국은 서민·자영업자 대출이 축소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방향을 못 잡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영업자를 비롯한 가계부채 문제를 임시 봉합하는 방식으로 매번 대응해왔다. 자영업자 코로나19 팬데믹이 불거진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자영업자의 자금난을 이유로 다섯 차례나 원리금 상환을 유예했다. 반드시 해소해야 할 문제지만 계속 미봉책으로 ‘숙제’를 미뤄온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리 예고한 정책은 예정대로 진행해야 당국의 시그널을 시장이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면서 “지금처럼 금리 인하 기대감이 깔려 있는 상황이라면 건전성 조치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당국의 ‘시간 끌기’에도 자영업자의 상황은 되레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국내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를 기록했다. 2012년 말(0.6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저점을 기록했던 2021년 말(0.16%)과 비교하면 3배 넘게 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차주의 대출 상황을 뜯어보면 추가 부실위험 징후는 더 뚜렷해지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올 3월 말 전체 다중채무 개인사업자는 172만 7351명으로 전체 개인사업 대출자(335만 9590명)의 절반(51.4%)을 넘어섰다. 다중채무자는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차주로 추가 대출이나 돌려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부실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차주로 분류된다.
당국이 부실한 자영업 차주를 고려해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도 유예했지만 그 기간 자영업자의 상황이 개선되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자영업자의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포화 상태인 자영업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당국이 서민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이유로 스트레스 DSR 시행을 연기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라면서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출로 연명시키기보다는 서서히 줄여나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빚으로 연명하는 사업자는 폐업을 지원하거나 다른 직종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영업자 지원 정책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라면서 “지원을 해봐야 살리기 어려운 사업자라면 금융 지원을 줄이고 절감한 몫을 유망한 소상공인에게 투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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