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명문대 교수인 A 씨는 그간 자신의 대학원 연구실에서 20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가르쳤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내국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인재였지만 이들 중 국내에 남아서 취업한 학생은 4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실리콘밸리 등 해외 주요 지역으로 떠났다. A 교수는 “적은 급여와 불안한 고용 등 한국의 근로 환경이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우수한 인재들을 국내에서 흡수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에서 첨단산업 분야를 공부하는 외국인 박사 등 우수 인력 중 60% 이상이 학업을 마친 뒤 한국을 떠나고 있다.
국내 인재 부족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해외 인재들의 유치뿐 아니라 정착에 힘을 싣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 정책과 처우 개선, 기업의 인식 개선 등이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외국인 박사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은 우선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급여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등 주요 지역은 물론 내국인 박사들과 비교해도 급여 수준이 떨어진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이공계(STEM) 분야를 전공한 외국인 박사 중 4000만 원 미만의 연봉을 받는 비율은 79.3%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00만 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박사는 15.7%에 달한다. 반면 내국인 박사의 절반가량(47.2%)은 4000만~8000만 원의 연소득을 올리고 있다. 4000만 원 미만은 35.4%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외국인 박사들은 일정 수준 급여가 보장되는 중견기업을 목표하고 있지만 정규직 채용은 ‘하늘의 별 따기’다. 국내 기업들이 언어·문화 등을 이유로 외국인 채용을 꺼리는 탓이다.
실제 외국인 박사들 중 많은 수는 단기 계약직이나 프로젝트 기반으로 일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사급 인력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지만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대우는 내국인 대졸자보다 못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언어·문화적 장벽이 있을 뿐 아니라 국내의 폐쇄적인 문화 탓에 일종의 차별마저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인재 정착을 위해 기업의 인식 변화를 이끌 만한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법무부는 영주권·국적 취득 단계를 줄인 ‘과학·기술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을 시행하는 등 인재 유치를 위한 제도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 6년(5단계) 이상 소요되던 영주권·국적 취득 절차를 3년(3단계)으로 간소화한 것이 제도의 골자다. 연구유학생(D-2-5) 비자와 연구원(E-3) 비자도 기존에 ‘3년 경력’ 기준을 삭제하는 등 대상을 확대한다.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 일환이다.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 명예회장은 “정부가 우수 인재 유치를 이민 정책의 첫 번째 단추로 생각하고 여러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라며 “많은 외국인 인재들이 국내에 체류하고 싶어하는 만큼 기업들의 인식을 바꿀 만한 구체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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