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1월 뉴발란스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 사옥. 이랜드 신발 상품기획자(MD)들과 마주 앉은 글로벌 본사 담당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뉴발란스의 한국 내 판매권을 가진 이랜드 측이 ‘530’ 운동화의 재출시(복각)를 역제안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글로벌 본사가 고른 신발 라인업에서 색상과 소재 정도만 한국내 수요에 맞췄던 이랜드의 제의라기엔 과감했다. 더군다나 530은 지난 2010년 출시됐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단종됐던 품목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해 허락했던 복각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기까지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2020년 출시 직후부터 곧바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유행이 다른 아시아권 국가와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확산됐을 정도다. 이랜드 관계자는 “어떤 스타일의 옷과 착용해도 어울릴 수 있도록 재출시하기 위해 당시 수백 켤레의 신발을 찢어 가며 만들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아재 신발’로 불렸던 뉴발란스가 한국에선 연이어 ‘밀리언셀러’를 배출하고 있다. 착용감과 기능성이 주목받았지만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줬던 본토에서와 달리 국내 시장에선 ‘패션 피플’의 운동화로 조명받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복각 모델의 인기가 한국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연달아 생겼다.
1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뉴발란스 530 운동화는 최근 국내에서 누적 200만 켤레 판매를 돌파했다. 여기에는 이 모델 특유의 투박함이 캐주얼이나 스포츠 착장과 잘 어울릴 것으로 판단한 이랜드 MD들의 감각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한국 패션 트렌드와 스니커즈류 유행에 민감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향후 ‘클래식 러닝’ 유형의 신발이 유행할 것이라고 글로벌 본사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530 모델이 낸 성과는 이랜드가 그간의 소극적인 기조를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뉴발란스 글로벌 본사에 레트로 복각 모델의 출시를 역제안하는 사례가 계속 나왔다. 327·610·2002·아리쉬 등의 모델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만 약 4년 동안 100만 켤레가 팔려 나간 327 모델처럼, 단종을 겪었던 상당수 운동화가 국내에서 확인한 트렌드를 바탕으로 다른 국가에 재출시됐다. 여기에는 뉴발란스 본사가 창립 년도인 1906년 이래의 신발 디자인을 모두 보관중이라는 점도 도움이 됐다. 뉴발란스는 이 신발들을 놓고 가을겨울(FW)이나 봄여름(SS)시즌에 앞서 각국 판매담당자와 마케팅 전략을 논의한다. 이랜드 관계자는 “530 시리즈가 ‘대박’이 나면서 주도성을 갖고 더 다양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에서 뉴발란스는 ‘연매출 1조 원’ 고지를 눈앞에 뒀다. 지난 2008년 이랜드와 독점 유통 계약을 맺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연 25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중소형 스포츠 브랜드에 불과했다. 하지만 계약 이후 2020년의 연간 판매가 5000억 원을 돌파하더니 지난해는 연매출 9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한국 뉴발란스 전체 매출에서 신발의 비중은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다”며 “브랜드 철학을 담은 상품을 지속 선보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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