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 전문가 사이에서 세금과 물가를 연동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과세표준이나 공제 한도는 명목 금액으로 책정돼 있어 중산층을 중심으로 세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에선 물가연동제 도입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다. 현행 공제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세금과 물가를 연계한다면 조세 제도가 더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무 업계에 따르면 한국세무사회는 지난 4일 국민의힘 재정·세제개편특별위원회에서 “물가 상승에 의한 세 부담 증가를 완화해야 한다”며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초로 산출된 물가연동지수를 과표구간·세율·공제에 연동하는 물가연동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재이 세무사회장도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가 상속세 일괄공제 상향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것이 물가연동세제에 있어서 기초적인 논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무사회가 물가연동제를 제안한 이유는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명목소득과 재산 가치가 올라간 것과 관련이 깊다. 세법에선 기본적으로 명목금액으로 공제 한도와 과표 구간을 규정한다.
이 때문에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명목소득이 증가하면 과표 적용 구간은 위로 올라가 한계세율도 높아진다. 인플레이션으로 각종 공제액의 실질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물가연동제를 적용하면 이 같은 ‘자동 증세’를 막는 효과가 있다.
해외에서도 소득세를 중심으로 물가연동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영국을 포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9개국이 물가연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물가연동제 적용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지난 4일 특위에서 여당 의원 상당수가 물가연동제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2022년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제안한 바 있다. 민주당은 올해 총선에서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공약으로 추가할지 검토하기도 했다.
다만 기획재정부에선 물가연동세제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세제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에 따라 세법상 모든 과표와 공제금액을 조정해야 돼서다. 더구나 한국은 기본적으로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높은 국가다. 2022년 기준 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33.6%로 15%대 수준인 일본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자칫하면 물가연동제에 따라 소득세를 안 내는 근로자가 더 늘어나 세원을 좁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물가연동제를 적용할 경우 고소득층의 납세액이 줄어들어 역진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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