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해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하다"는 진단을 내놨다. 국내 경기가 저점을 지나고 있다며 조만간 반등할 것이라는 '경기 저점론'을 사실상 1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KDI는 고금리로 내수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경기 회복 흐름을 이어간다는 정부 평가와도 달라 눈길을 끌고 있다.
KDI는 8일 발표한 '7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수출 회복세로 경기 부진이 완화된다거나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다는 그간의 평가보다 후퇴한 것이다. KDI는 지난해 7월 "(국내) 경기가 저점을 지나고 있다"고 진단한 뒤 같은해 10월부터 '경기 부진이 완화한다'된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평가를 유지해온 KDI는 지난달 수출 증가세가 강해지자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러다 최근 발표된 5월 산업활동동향 지표들이 줄줄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다소 미약”으로 한달 만에 어두워진 경기 진단으로 돌아섰다. KDI는 "고금리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내수는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소매판매, 설비투자, 건설투자가 모두 감소세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실제 5월 전산업생산은 작년 같은 달보다 2.2% 늘어, 4월(3.3%)보다 증가세가 축소됐다. 전월과 비교하면 0.7% 감소했다. 광공업생산(3.5%)은 반도체(18.1%)의 높은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자동차(-1.9%)와 전기장비(-18.0%)의 감소세가 확대되면서 증가 폭이 축소됐다. 제조업 출하(0.2%)가 자동차(-4.0%)와 전기장비(-20.6%)를 중심으로 부진한 가운데 제조업 재고율(110.9%)은 소폭 상승하는 등 제조업 회복세도 다소 완만해진 모습이다.
상품소비는 더욱 위축된 모습이다. 지난 5월 소매판매는 작년 같은 달보다 3.1% 줄어, 전월(-2.2%)보다 감소 폭이 커졌다. 서비스업 생산 중 소비와 밀접한 도소매업(-1.4%)과 숙박·음식점업(-0.9%)도 내림세를 지속했다. 설비투자 역시 고금리 영향으로 부진이 지속됐다. 5월 설비투자는 운송장비 중심으로 감소 폭이 확대되면서 작년 동월 대비 5.1% 급감했다. 건설투자도 부진하다. 5월 건설기성(불변)은 건축 부문의 부진에 기인해 전월(-0.1%)보다 낮은 -3.8% 감소율을 기록했다.
그나마 6월 수출은 5.1%로 회복세가 유지됐다. 다만 조업일수 감소로 전월(11.5%)보다는 증가폭이 축소됐다. 일평균 기준으로는 전월(9.0%)보다 높은 12.4%를 기록했다. 품목별로 보면 기준으로 변동성이 높은 선박(103.6%→-35.1%)이 대폭 감소했지만, IT 품목(40.8%→54.6%)은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다.
KDI는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 대외 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며 경기 반등에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KDI는 “6월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단계적 감산 완화가 결정된 이후 급락했으나,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따른 원유 공급 불안이 지속되면서 큰 폭의 상승으로 전환했다”며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로 당분간 재고 감소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유가 상방 압력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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