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가 빠르다며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하다고 밝혔다. 차선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지만 집값과 환율,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통화정책 전환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연내 금리는 내리겠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보다 먼저 움직이는 조기 금리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총재는 11일 하반기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뒤 “물가 상승률의 둔화 추세를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외환시장과 부동산 가격 오름세 및 가계부채 증가세가 미치는 영향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금리 동결은 소수 의견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보다 0.24% 상승했다. 이는 2018년 9월 셋째 주(0.26%)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5년 10개월 만의 최대 상승률이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였던 2021년보다 최근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역시 6월 한 달 동안 5조 3400억 원이나 급증했다.
이 총재는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언급했다. 2021년 8월 이후 거의 3년 만에 나온 첫 금리 인하 검토 발언이다.
다만,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이 시장 안정이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 수도권 부동산, 가계부채 움직임 등 위험 요인이 많다”며 “언제 방향 전환을 할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리 인하 위험 요인을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파적”이라며 “금리 인하를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선제적인 금리 인하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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