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개 선조들의 화려한 과거와 전통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 시대 사람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대부분이 자신과 가족들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지, 지붕도 없는 곳에서 벌벌 떨어야 하지 않을지 걱정해야 했다. 1798년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는 저서 ‘인구론’을 통해 인구증가가 기술개발과의 속도경쟁에서 앞서며 인류는 더 굶주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확히 맞지는 않더라도 전통시대 경제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1870년대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인류는 조직·제도와 함께 더 뛰어난 기술력으로 절대 빈곤의 굴레를 탈출했다. 물론 ‘맬서스의 인구론’도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20세기에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인류는 처음으로 물질적 풍요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선조들이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의 번영을 우리는 누리고 있다.
그렇다고 행복할까. 신간 ‘20세기 경제사-우리는 유토피아로 가고 있는가(원제 Slouching toward utopia)’는 20세기의 성공과 실패를 경제적 맥락에서 살펴본다. 우리는 물질적 번영을 이루었지만 그 과실이 매우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기적인 경기침체와 공황은 지금 시대가 과거보다는 오히려 못하다는 자기비하 심리도 부르고 있다. 게다가 20세기 이후 가장 잔혹했던 독재 정권이 출현했고, 각각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다.
또 21세기의 우리는 기후 위기, 불평등, 포퓰리즘, 미중 패권 경쟁의 이슈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로 들어섰다.
2007~2008년 경제위기에 서방 선진국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이른바 ‘장기 20세기’는 2010년에 끝났다고 한다. 경제성장은 느려졌고 세계화는 역전됐으며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리더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거대 내러티브가 필요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주변의 경제학자라고 이야기하는 저자는 실제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부 차관보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 시행했던 당사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스스로의 입장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수많은 쟁점과 깨알 같은 디테일을 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저자는 역사의 필연적, 구조적 흐름을 설명하면서도 여러 곳에서 ‘개인’의 역할과 우연적 요인을 상기시킨다. 3만 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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