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증시가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음에도 국내 투자자들이 추가적인 엔저(엔화 가치 하락)를 예상하고 현지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 순매도 규모가 4년 만에 최대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일시적 엔화 강세에도 국내 투자자들이 곧바로 대규모 순매수 기조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1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12일까지 일본 주식을 4013만 7896달러(약 556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2020년 9월(4847만 2173달러) 이후 월간 순매도 규모로는 최대 액수다.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해 4월부터 매달 일본 주식을 순매수하다가 지난달 3088만 641달러어치를 순매도하면서 15개월 만에 매도 우위로 돌아선 바 있다. 이달 들어서는 고작 10거래일 만에 지난달 순매도 액수보다 925만 7255달러어치 더 많은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국내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 처분 규모를 늘리는 것은 현지 증시가 최고점에 달한 상황을 틈타 환 손실 위험을 미리 줄이겠다는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더 떨어질 경우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상쇄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실제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을 한창 내다 팔던 9~11일 일본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는 사흘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면서 4만2224.02엔까지 치솟았다. 다른 외국인투자가들이 엔화 가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저가 매집에 나선 효과가 컸다. 다만 보유 지분 상당분을 팔아 치웠음에도 주가 상승 효과에 힘입어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보관액은 지난달 말 40억 4814만 2618달러(약 5조 5982억 원)에서 41억 6664만 1017달러(약 5조 7604억 원)로 1억 1849만 8399달러(약 1622억 원) 더 늘었다.
전문가들은 아직 이달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7월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매도액은 1억 달러에 육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1억 달러어치 이상 팔아 치운 것은 2017년 12월(1억 8809만 9838달러)이 마지막이다. 추가 주식 매도를 점치는 이유는 일본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다 일본 기업의 체력도 뚜렷하게 강화되는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이달 일본 정부는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2.9%(연율 기준)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발표한 ‘1.8% 감소’에서 수치를 더 하향 조정했다. 긴축 조치에 대한 부담이 늘자 시장에서는 일본이 이달에도 금리를 인상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일본 당국이 화폐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경우 그동안 엔화 약세에 베팅했던 자금까지 청산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정부의 기습적인 시장 개입 가능성 등으로 엔화 약세 분위기가 반전됐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 인하설이 탄력을 받는 상황이라 엔화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은) 지금이 엔화가 제일 싸다고 보고 일본 주식을 매집하는 다른 외국인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일본의 주요 경제지표가 긍정적이지 않아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에 물음표가 붙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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