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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품질·관리 노하우 먹혀…K원전 생태계 10년치 일감 챙겼다

■체코 맞춤형 전략의 승리

kW당 건설비 3571弗 세계 최저

핵심설비 국산화로 안전성 높여

국내외 유지보수 경험 인정받아

네덜란드 신규 수주전도 본격화

"탈원전 이후 국내 생태계 되살려"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4개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15년 만에 한국형 원전 수출에 성공한 것은 민관이 한 팀을 이뤄 정해진 예산으로 적기에 시공한다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을 내세운 한국의 승부수가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건설 비용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체코 정부의 의중을 간파한 전략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다소 불리했던 외교전은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장을 원전 세일즈 무대로 활용하면서 극복했다. 일각에서는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로 날아가 바라카 원전 수주를 앞두고 담판 외교를 벌인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윤 대통령의 체코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대 48조 원에 달하는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한국형 원전의 최대 강점은 낮은 건설 비용이다.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당 3571달러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맞수인 프랑스(㎾당 7931달러)의 절반에 불과했다. 원전 1기당 건설 비용을 내리고자 발주 규모를 키웠던 체코로서는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를 통한 금융 지원까지 약속하면서 원활한 건설 자금 조달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한국이 정해진 기한 내 공사를 마친다는 점도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한국은 2009년 수주한 UAE 바라카 원전을 일정대로 건설했지만 프랑스는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를 2009년까지 짓기로 했다가 13년가량 지연했다.



지난 정부 5년 탈원전 어려움 속에서도 한 단계 높인 기술력이 비교 우위에 있었다는 관전평이다. UAE 원전 수주 당시 미국 등에서 사 온 일부 핵심 설비까지 국산화한 데다 안전성도 높인 덕분이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원전을 동시에 지으면서 원전 건설·운영·유지·보수 노하우도 진일보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국의 (탁월한) 원전 기술을 전 세계적으로 증명받은 것”이라며 “국내 원전 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체코에 진출한 우리기업들도 원전 수주에 일조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990년 수교 이후 34년간 쌓아온 한국과 체코 간의 신뢰관계와 국내 진출기업들이 구축해 온 우호적 협력 환경이 이번 선정의 밑거름이 됐다”고 전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내년 3월 발주처인 체코전력공사(CEZ)와 본계약을 차질 없이 체결하면 2029년 공사를 시작한다. 실제 상업운전에 들어가는 것은 12년 뒤인 2036년이다. 우리 원전 생태계에 10여 년치 일감이 생기는 셈이다. 원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산화율 등에 따라 실제 우리 기업들이 가져가는 이익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원전 생태계 복원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전 10기 계속운전 절차 진행 등에 이어 체코 원전수출 계약이 최종 성사될 경우 양질의 수출일감이 대량으로 공급된다”며 “국내 원전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부연했다.

원전 수주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원전 준공 후 60년의 원전 수명 기간 중 원전 운영, 기기 교체 등 운영 지원에 참여함으로써 적잖은 액수의 추가 수주도 따라오게 된다. 원전의 수명이 다한 뒤에는 해체 작업 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이점이 있을 개연성이 높다. 원전 수주로 체코와는 100년 가까운 직간접적인 협력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호평이 나온다. 체코에서 마수걸이 수출이 이뤄지면서 2030년까지 한국형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체코를 시작으로 추후 다른 (입찰) 경쟁에서 한국이 우위에 선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한수원을 비롯한 ‘팀코리아’는 당장 원전 종주국인 영국과 폴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추가 수주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앞서 한수원은 2022년 10월 폴란드 원전 1차 사업에서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밀려 고배를 마셨지만 2차 사업에서는 민간 발전사인 제팍 등과 협력의향서(LOI)를 주고받으면서 치고 나가고 있다. 현재는 사업 타당성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체코에서 한국형 원전이 들어서는 만큼 폴란드에서도 한국산 도입에 대한 부담을 한결 덜었다.

조만간 네덜란드 신규 원전 수주전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네덜란드 정부는 제일란트주 보르셀러 지역에 원전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말 네덜란드 에너지부와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기술 타당성 조사 계약을 맺었다. 조사 결과는 올가을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원전 수주는 한국의 원자력 산업을 되살리고 향후 수출 기회를 대폭 늘릴 수 있는 쾌거”라며 “탈원전 이후 국내 원자력 생태계를 완전히 되살릴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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