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 10년 만기 10억 달러 ‘블루본드’를 발행해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블루본드는 해양생태계 친화적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국내 금융기관 중 해외시장에서 블루본드를 발행한 곳은 수은이 처음이다. 환경 규제에 민감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수요를 끌어오는 동시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채권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것이다. 수은 관계자는 “블루본드뿐 아니라 녹색 채권 13건, 지속 가능 채권 2건, 사회적 채권 1건을 발행했다”며 “ESG 채권으로 조달된 자금은 기업의 친환경 산업 진출과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는 데 두루 쓰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책금융기관들이 친환경·사회적 책임경영을 위해 선도적으로 ESG 채권 발행을 늘리고 있다. ESG 채권은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환경문제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만 사용하겠다는 것을 확약한 특수목적채권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발행 형태를 세분화하면서 ESG 경영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6억 달러 규모로 ‘젠더본드’를 발행해 채권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젠더본드는 양성평등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기업은행이 발행한 젠더본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추진된 관련 채권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 조달 자금을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운영하는 창업 7년 이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라며 “젠더본드를 통해 여성 CEO가 안정적으로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젠더본드가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KDB산업은행은 환경부가 주관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적용 시범사업’에 참여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적용 녹색 채권을 3000억 원 규모로 발행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관 중 최대 규모다.
정책금융기관들이 ESG 채권 발행 형태를 다양화하면서 채권 발행량도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7조 원 규모의 원화 ESG 채권을 발행해 3년 전(4000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16배 넘는 규모를 조달했다. 수은도 지난해 전년보다 8% 늘어난 17억 6000만 달러 규모의 관련 채권을 공급해 ESG 경영을 확대하고 있다. 수은은 발행량을 점차 늘려 2030년까지 누적 기준 200억 달러 규모의 ESG 채권을 공급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이 녹색 채권, 사회적 채권, 지속 가능 채권 등 ESG 채권 포토폴리오를 선도적으로 다양화면서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면서 “ESG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만큼 관련 채권 발행 규모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책금융기관들은 ESG 채권을 발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산업 직접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산은·수은·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5개 정책금융기관은 올 3월 기업의 탄소 저감 설비투자를 위해 2030년까지 총 420조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36조 원을 공급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지원 규모를 67%나 확 늘린 셈이다. 산은이 총 154조 원으로 지원 규모가 가장 크고 신용보증기금 100조 원, 수은이 87조 원을 투입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를 통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2억 9100만 톤)의 29.5%인 8597만 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책금융기관들은 정부의 금융기관답게 민간 금융기관이 선뜻 나서기 어려운 분야의 마중물 역할도 도맡고 있다. 산은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 등 5대 은행과 9조 원을 출자해 신재생에너지발전 시설 증설에 투자할 ‘미래에너지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은 여기에 14조 원 규모의 후순위 대출을 공급해 펀드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해상풍력의 경우 대출부터 회수까지 최대 25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돼 상대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면서 “필요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후순위 대출과 지분 투자 등 모험자본 공급이 필요한데 정책금융기관의 출자로 자본을 보다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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