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7일 일하며, 쉴 때도 늘 일에 대해 생각한다.”
소문난 ‘워커홀릭’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평소 인터뷰에서 엔비디아를 키운 경영 철학을 밝히며 이처럼 말한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항상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그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자신이 한 일에 진심으로 감사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확실히 그는 일과 사랑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약 일과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일에 중독이 된다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일 중독자’들은 자신을 돌보면서 건강하게 일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내팽개치고 일에 무한정 시간을 쏟는다.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인의 절반이 스스로를 ‘일 중독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현대인들에게 일 중독 현상은 만연해있다. 워싱턴포스트(WP)·포브스 등 주요 외신들이 주기적으로 일 중독에 대한 특집기사를 쓸 정도다. 그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일하기로 소문난 한국의 '열일러(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가져와 봤다.
사랑과 중독 구분하기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자신의 현 상태 체크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당신은 일 중독입니까, 아니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까'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두 상태를 구분할 줄 알아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문제가 생길 일이 적지만 ‘일 중독자’들은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행동 과학자이자 연구원인 툰 타리스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장시간 일하는 사람들에게 ‘워커홀릭’이라는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며 “커리어를 키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일에 몰두하거나 자동차나 집 값을 지불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말 일 자체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아테네에 있는 조지아 대학의 산업 조직 심리학자인 말리사 클라크는 “진정한 일 중독은 동기, 생각, 감정, 행동의 네 가지 차원을 포함한다”며 “구체적으론 일에 대한 내적 충동, 일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일하지 않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합리적인 수준 이상으로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고 분석했다.
평범한 사람도 일에 중독될 수 있어
WP는 “일 중독이 인구 통계를 초월하며 모든 직업에 존재할 수 있다”고 짚었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자존감이 높거나 낮거나 등에 상관없이 어느 배경을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일 중독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클라크에 따르면 완벽주의자와 외향적인 사람들, 야심이 넘치는 사람들은 일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경쟁과 장시간 근무를 장려하는 회사 또는 관리자와 자영업자도 다른 사람의 통제 하에 일하는 사람보다 더 일 중독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팬데믹과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확산된 재택 근무제도도 일과 생활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새로운 일 중독자들을 만들어냈다는 분석도 있다. 클라크는 “당신의 평범한 동료도 얼마든지 일 중독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많이 일한다고 직무 성과 높은 것 아냐
건강도 해칠 정도로 많이 일을 하면 성과도 좋을까? 그렇지 않다. 노동 시간을 늘림으로써 매출이 늘거나 초과근무수당이 느는 등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개선될 수 있지만 결국 일 중독과 직무 성과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론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스스로가 일 중독에 걸렸다는 증거 중 하나는 집중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하며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일을 회피 전략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목표 달성을 동기로 삼고 높은 기준을 가지고 도전을 이겨내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타리스는 “일 중독자들은 스스로 많은 일을 하지만 반드시 그들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너무 열심히 일하면 피로가 쌓여 조직, 고객 또는 자신에게 해로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8년 노르웨이에서 1781명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일에 중독된 간호사들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환자를 해치거나 거의 해칠 뻔 했고 직장에서 졸거나 장비를 부수는 등의 사고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았다.
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독법’은
일에 중독된 사람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양질의 식사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건강을 위해서는 일 중독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데 해독법은 따로 없을까.
타리스는 “일 중독을 안정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아직 없다”면서도 “최악의 결과를 무디게 하는 방법은 있는데 바로 ‘마음 챙김’이다"라고 말했다.
즉 언제든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연습하면 일 중독에 따른 짜증과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복귀를 전제로 한 휴식도 좋은 방법이다. 일 중독자들은 스스로 일을 그만두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 중독자들을 구별해 건강한 업무 방식을 권장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근로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도 해결책 중 하나다. 명령을 하달하는 식의 수직적인 근로 환경은 근로자들을 일에 몰두하게 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번 아웃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유럽 전역의 중소기업 근로자 약 93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소프트 컨트롤’ 경영이 일 중독과 번아웃 발생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 중독자들은 그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하며 단순히 ‘하는 것’을 중요하게 믿는다고 한다. 포브스는 “때로는 일을 미룸으로써 자신의 삶에 여유를 찾고 다른 요소들을 추가할 줄 알아야 더 행복한 모습으로 더 오래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일요일 ‘일당백(일요일엔 당신이 궁금한 100가지 일 이야기)’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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