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디지털 전략 최고책임자(CDO)들이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망 분리 규제를 꼽았다. 현재 내부망과 외부망을 엄격히 분리해놓은 것이 금융사들의 혁신적인 금융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신사업 진출을 어렵게 하는 부수 업무 규정이나 데이터 결합 규제, 디지털 인력 부족 등도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50개 금융사 CEO 및 CDO를 대상으로 디지털 전략 추진 상황 및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10명 중 4명은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망 분리 등 과도한 보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2013년 주요 금융사와 언론사를 대상으로 악성코드가 확산되며 발생한 금융 전산 사고를 계기로 국내 금융사들은 내부 업무망과 인터넷·무선통신망 등 외부망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규제가 적용된 지 10여 년간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금융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정작 우리 금융사들은 망 분리 규제로 인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 카드사 CEO는 “챗 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를 이용한다면 훨씬 고객의 필요에 맞는 서비스나 상품을 구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망이 분리돼 개발자들이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금융사들이 사고를 내 도입된 규제이니만큼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풀어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있어 디지털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설문에 참가한 CEO와 CDO 중 약 70%가 망 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AI·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 도입을 촉진해 혁신 금융 서비스 개발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망 분리 규제 완화에 이어 경영진들이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은 것은 ‘신사업 막는 부수 업무 규정 등 당국 규제(18%)’였으며 디지털 전문 인력 부족(10%), 혁신 서비스 개발을 막는 데이터 결합 규제(8%) 등이었다. 한 보험사 CEO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게 디지털 전환이 아닌데 현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며 “외부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을 만들어내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