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은 382조 원으로 매년 평균 연 15%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 제도 중 기업이 책임지고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은 제도가 시행된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에도 여전히 대부분 만기 1년~3년 내외의 짧은 예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과거 2%대의 저금리 시대 이후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시중 금리가 급등한 지난해에는 원리금보장 상품 수익률도 연 4%까지 상승해 DB형 수익률이 양호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퇴직연금 원리금보장 상품의 금리는 매월 말 퇴직연금 사업자가 공시를 하는데, 지난해 말 평균 약 4.0% 수준이었던 금리가 올해 6월 기준으로는 평균 3.6%으로 낮아졌다. 이런 현상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두드러지는데 3년 만기의 경우 평균 약 3.3%으로 전년 말 대비 평균 0.5%포인트 줄었다.
각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인하 규모와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금리 하락을 확정된 수순으로 받아드리는 분위기다. 이러한 시점에서 퇴직연금 DB형의 합리적인 투자 솔루션 역시 단기 예금 중심에서 장기 채권으로 포트폴리오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
장기 채권 중심으로 투자를 전환하면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시점에 채권을 매입해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향후 금리가 하락하더라도 매입 당시의 높은 수익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금리 하락기에 3년 이하의 예금 등에 투자했다면 해당 예금이 만기가 된 시점에 이미 낮아진 금리로 예금을 다시 매수해야 하기 때문에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장기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중장기적으로 금리가 인하된다면 처음 기대했던 수익률을 뛰어 넘는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채권 투자의 경우 금리가 하락하면 보유한 채권의 가격이 높아져 평가 수익률이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기까지 장기 채권을 보유해 처음 계획했던 수익을 오랜 기간 향유하거나 금리가 하락한 시점에 매도를 통해 초과 수익을 확정하는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다만 실제 퇴직연금 운용방향을 변경하려고 할 때 좀 더 세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각 기업마다 다른 근로자 평균 근속기간, 연령대 분포, 임금인상율 등을 고려해 그에 맞는 목표 수익률을 상정하고 인출을 대비할 수 있는 자산을 구성해야 퇴직연금 DB형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DB형은 향후 근로자 퇴직금 지급을 기업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부채의 성격을 가진다. 이에 따라 매년 국내 퇴직연금 관련법에 정해진 퇴직부채 평가를 받고 이에 따라 퇴직금 지급용 적립 금액이 최소 기준에 미달할 경우 기업이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따라서 운용 손실을 피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예금과 같은 원리금보장 상품만으로 운용하기보다는 금리 하락이 가시화된 현재 환경을 활용해 전략적인 방법으로 장기 채권 또는 3년 5년 10년, 20년, 30년 등 기간별로 채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현명한 DB형 운용방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위해 전문 기관의 컨설팅 등 도움을 받아 보는 것도 꼭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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