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가 급여일 전에 급전이 필요할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제1금융권에 속한 대형 은행에서 저리 대출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은행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이 집행한 신규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KCB)는 925.8점이다. 만약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부 저신용자는 이때 고금리 단기 카드 대출이나 신용카드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리볼빙)을 선택한다. 이는 신용점수를 떨어뜨려 향후 대출 조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더 나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되는 이른바 ‘신용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스터카드 한국 지사장을 지낸 김휘준 대표는 저신용자 사이 만연한 신용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2019년 페이워치를 설립했다. 페이워치의 핵심 사업은 월급날이 다가오기 전 일부 급여를 선지급해주는 금융 서비스다. 은행과 제휴를 맺어 저리로 자금을 조달해 기간제 근로자에게 급여를 미리 지급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근로자 복지를 강화하고 이직률을 낮추려 하는 국내외 다수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이 페이워치 서비스를 도입했다. 페이워치는 사업 모델(BM)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기업이 환경·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하는 미국 밴더빌트대, 일리노이대 기금 재단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선순환 사업 모델 구축=김 대표는 페이워치 사업의 핵심이 “대형 은행으로부터 저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워치는 현재 한국, 말레이시아,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5개 지역에서 급여 선지급 서비스 제공하고 있다. 페이워치 조사에 따르면 급여 선지급 서비스를 이용하는 말레이시아 근로자의 92%, 필리핀 근로자의 87%, 인도네시아 근로자의 94%가 약 120만 원 이하의 급여를 받고 있다. 은행 자금 조달 금리가 높아지면 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가 높아져 쉽사리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페이워치는 평균 약 4%의 금리로 각 지역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은행과 제휴를 맺었다. 김 대표는 은행을 설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중요했던 것은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과의 제휴다. 페이워치가 은행 자금을 중개해 근로자에게 급여를 선지급하면 제휴 기업은 급여날 월급 전액을 페이워치에 입금한다. 페이워치는 여기서 선지급 월급 전액과 이자를 은행에 지급하고 나머지를 근로자에게 준다. 대기업에서 급여 미지급 사고가 날 확률은 작으므로 은행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크지 않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제공해줄 수 있다.
또 한 가지 요소는 ESG 경영이다. 페이워치가 국내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급여를 일부 선지급 받은 사람들의 61%가 ‘병원비, 경조사비 등 긴급 자금’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32%는 ‘식료품 등 생활비’를, 7%만이 ‘레저 및 취미 생활’을 택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단기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 취약 계층을 대기업이라는 안전망을 거쳐 지원하는 의미가 있어 ESG 경영 강화를 원하는 대형 은행에게는 페이워치와 제휴할 명분이 생겼다. 페이워치는 국내에서 CU, CGV, 투썸플레이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제휴하고 있다.
결국 대금 미지급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은 대기업과 제휴해 ESG 경영 강화를 원하는 대형 은행과 손을 잡은 점이 사업 모델의 선순환을 불러일으켰다.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으니 저리 자금 융통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낮은 수수료를 받고 급여를 선지급하니 직원 복지 강화와 이직률 감소를 원하는 대기업이 페이워치를 추가 도입하게 된다. 이는 또 다른 대형 금융기관과의 협업으로 이어진다. 동남아에서 페이워치는 JP모건과 씨티그룹 등 대형 은행과 협업하고 피자헛, KFC, 이케아, 세븐일레븐, 샹그릴라호텔 등 다수의 기간제 근로자를 둔 대기업과 제휴를 맺고 있다.
◇"글로벌 확장 자신 있다"=김 대표가 페이워치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구상하게 된 것은 그가 마스터카드 한국 지사장직을 그만둔 후 작은 와인바를 운영하던 시기 직접 겪은 경험 때문이다. 당시 가게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이 월급 가불을 요청했는데 여러 사정을 듣다보니 금융 취약 계층에게 페이워치와 같은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마스터카드 근무 경험을 계기로 지속 가능한 금융 상품 설계에는 자신이 있었다”며 “우리나라, 특히 소득이 낮은 동남아 내 젊은 청년들의 금융 도약을 돕는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페이워치 서비스가 가지는 사회적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면서 동시에 사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ESG 경영 강화를 명분으로 은행을 설득한 것을 비롯해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 현지 사업을 총괄할 인재의 합류를 설득하는 데에도 ‘임팩트 금융(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금융)’적 요소를 강조한다. 페이워치에 합류한 로웰 델 피에로 필리핀 지사장은 HSBC를 거쳐 현지 마스터카드 지사장을 지냈고 빌리 림 말레이시아 지사장은 현지 스탠다드차티드 지사장을 역임했다. 김 대표는 “급여, 스톡옵션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토대로 인재를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시작으로 동남아 주요국으로 성공적으로 진출한 페이워치는 본격적인 스케일업(사업 확장)을 꿈꾸고 있다. 수수료율을 낮게 유지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야 손익 분기점(BEP) 달성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페이워치와 제휴한 기업에서 근로하고 있는 직원 수는 50만 명 남짓이다. 이를 늘려 잠재적인 고객을 추가 확보하는 것이 페이워치의 일차적인 목표다. 김 대표는 “5개 지역에 진출한 경험을 기반으로 현지 규제와 법령을 빠르게 파악해 사업을 개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자신했다.
금융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기업 비전을 급여 선지금 서비스 이외 영역으로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페이워치는 올 3월 하나은행과 제휴를 맺고 연 1% 가산 금리를 주는 우대금리 적금 상품을 가입자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이런 연계 사업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용카드 사용률이 낮고 사금융이 발달한 동남아 시장에서 현지에 진출한 대형 은행과 협업해 금융 취약 계층을 제도권 금융으로 끌어오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보험, 대출, 저금 등 각 분야에서 수수료를 낮게 가져가면서도 리스크를 작게 만들어 지속 가능한 금융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을 시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젊은이들이 나이 들어가는 ‘라이프사이클(생애 주기)’에 따라 각 시기에 필요한 금융 상품을 올바르게 제시하는 기업을 꿈꾸고 있다”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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