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이 한 달도 안 돼 달러당 160엔대에서 140엔대까지 주저앉자 주가 하락을 우려한 개인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 대다수는 금리 불확실성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 각종 변수가 시장에 혼재돼 있는 만큼 당분간 일본 주식 투자 심리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달 일본 주식을 총 5140만 4018달러(약 698억 원)어치를 내다판 데 이어 이달에도 1~2일 2거래일 동안 286만 1334달러(약 39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월간 기준으로 2020년 3월(5349만 775달러) 이후 4년 4개월 만에 가장 많은 일본 주식을 7월 한 달간 순매도한 이후 이달에도 ‘팔자’ 행보를 멈추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해 4월부터 매달 일본 주식을 사들이다가 올 6월 3088만 641달러어치를 순매도하면서 15개월 만에 매도 우위로 돌아선 바 있다.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증시 탈출 속도는 특히 지난달 엔화 가치가 반등한 직후부터 더 빨라지는 분위기다. 국내 투자자들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60엔대에서 150엔대로 내려간 지난달 11일부터 이달 2일까지 4292만 6075달러(약 583억 원)어치를 팔아치워 순매도 물량을 집중시켰다.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투매 행태는 미국 시장 거래와도 크게 구분되는 지점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각종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도 올 들어 매달 미국 주식을 순매수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달에도 미국 주식을 11억 83만 702달러(약 1조 4918억 원)어치 사들였고 이달에도 1~2일 2거래일간 1억 6415만 9787달러(약 2225억 원)어치 매집했다.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엔화 가치 반등 이후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4만을 넘었던 닛케이지수는 엔화 강세가 나타난 이후 하락세를 탔다. 여기에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지난달 31일 단기 정책금리 인상 조치를 단행하면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0엔까지 치솟았고 그사이 미국발(發)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까지 확산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국의 금리 인하와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저렴한 엔화로 매수한 해외 자산을 다시 매도) 현상까지 나타날 경우 일본 증시 이탈이 한동안 더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 37억 3856만 5920달러(약 5조 751억 원)였던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유 금액은 이달 1일 43억 442만 3880달러(약 5조 8441억 원)로 증가한 상태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장기간 지속된 통화 완화 정책으로 채권·주식시장 왜곡과 금융기관 수익성 악화 등의 부작용이 누적된 상황”이라며 “미일 금리 차 축소 기대에 따른 엔화 강세, 증시 하락 현상은 적어도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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