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투자자들이 최근 한 달 새 국내 주식형 펀드에 1조 원 이상 자금을 쏟아부으며 국장에 베팅했지만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가 공포로 확산되며 국내 투자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와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로 아시아 증시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어 당분간 변동성 장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현금 비중을 늘릴 것을 조언했다.
5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 최근 한 달 동안 국내 주식형 펀드에 1조 785억 원이 신규 설정됐다. 같은 기간 북미 주식형 펀드의 신규 설정액(1조 2055억)보다 적은 규모지만 연초 이후 국내 주식형 펀드에 6375억 원이 유입된 점을 감안하면 최근 한 달 새 설정액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반면 북미 주식형 펀드는 연초 이후 증가한 설정액이 5조 6298억 원으로 국내 주식형의 8.5배가 넘지만 최근 수개월간 신규 설정액은 점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일 기준 최근 1주일 동안에는 북미 주식 펀드의 신규 설정액(2872억 원)이 국내 주식 펀드(4412억 원)보다 되레 더 적었다.
이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인공지능(AI) 열풍에 미국 기술주 중심으로 주가가 급등하며 펀드 시장에서도 북미 주식 펀드로의 집중 투자가 일어났지만 하반기 들어 미 대선을 앞두고 변동성이 커지며 차익 실현 후 국장으로 이동하려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연초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발표 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주주 환원책이 잇따라 발표된 데다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의 유예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국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부추겼다. 실제 올들어 이달 1일까지 ‘KRX은행(33.56%)’ ‘KRX300금융(32.84%)’ ‘KRX보험(29.10%)’ 등 금융 관련 지수가 전체 지수 상승률 상위권을 휩쓸었다.
하지만 지난주 말부터 시작된 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에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며 간만에 국내주식 펀드에 불었던 훈풍에도 제대로 찬물을 끼얹는 모습이다. 지난달 31일 이란 수도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아스마일 하니예 암살 사건을 둘러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폭풍 전야 상황인 점 역시 글로벌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은 국내외 시장 관계없이 주식 비중을 낮추고 현금 비중을 늘릴 것을 조언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는 과도하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면서도 “제조업 회복 부진이 지속되고 중동 및 미 대선이라는 지정학적 위험이 향후 주식의 기대수익률을 제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주식 비중을 기존 ‘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하고 현금은 ‘확대’로 2단계 상향 조정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 주식시장이 고용지표 둔화와 AI 이익 우려까지 겹치며 대폭 하락하면서 이와 연동된 코스피도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며 “이달 말 예정된 잭슨홀미팅과 엔비디아 2분기 실적발표까지 변동성 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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