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기업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상당수에 이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투자 혹한기로 인해 플랫폼 등 일부 업종의 기업이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것이다. 아울러 과거와 달리 최대 시장인 미국 등 해외 진출에 제약이 생긴 만큼 한국 기업을 파트너로 삼아 동남아 등지에서 시장 지배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7일 벤처투자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은 중국 투자자로부터 1206억 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투자 분야는 게임·금융·바이오·푸드·제조·콘텐츠 등으로 다양했다. 1054억 원을 기록한 2022년에 비해 20% 가까이 증가했다.
업계에서도 중국 자본의 관심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한다.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는 지난해 하반기에 중국 벤처캐피털(VC)이 참여하는 ‘액셀러레이터 라운드 브릿지’를 처음 개최했다. 한국 AC가 투자한 기업을 중국 VC에 소개하는 자리에 중국 대형 VC가 대거 참여해 화제가 됐다. 레노버홀딩스 계열사이자 운용자산(AUM)이 120조 원인 레전드캐피탈, 의료·바이오 및 헬스케어 산업 전문 투자사이자 AUM 23조 원인 하이라이트캐피탈(HLC) 등이 대표적이다.
협회 관계자는 “올해도 유사한 행사를 개최할 예정으로 중국 현지 기업의 관심이 크다 보니 지난해에 비해 참여하는 현지 VC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국발 투자 열기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정주용 그래비티벤처스 부대표는 “막대한 투자금을 보유했지만 중국 현지에서 더 이상 투자처 발굴이 쉽지 않은 탓에 알리바바·핀둬둬·틱톡 등과 같은 대기업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은 지정학 리스크도 낮고 풍부한 자금과 네트워크를 지원해주면 해외시장에서도 두각을 낼 스타트업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풍부하다. 중국 큰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수년 동안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은 경쟁적으로 동남아 지역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으면서 포트폴리오사로 확보한 현지 기업이 약 스무 곳에 이른다”면서 “기존 포트폴리오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문화·콘텐츠, 뷰티 등과 같은 업종 위주로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국 플랫폼 기업들이 현재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는 것도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기회 요인이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줄어든 상황에서 우량 스타트업을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최근 공개한 ‘플랫폼 스타트업 투자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플랫폼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금액이 1조 2486억 원으로 2022년(2조 4117억 원) 대비 1조 1631억 원(48.2%) 감소했다. 플랫폼 스타트업이 받은 투자는 2021년만 해도 5조 4925억 원에 달했지만 2022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한 플랫폼 스타트업 부사장은 “투자 혹한기는 어느 정도 벗어나는 국면이지만 국내 VC들은 여전히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등 딥테크 분야 아니면 좀처럼 투자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어느 정도 스케일업에 성공한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해외 진출을 대부분 추진하는 만큼 동남아 등 전 세계적으로 풍부한 포트폴리오 회사를 보유한 알리바바 같은 곳과 파트너가 되면 여러모로 장점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다만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인데 해외 기업이 지나치게 지분을 높게 가져가면 핵심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플랫폼 산업의 본질적 경쟁력이 하락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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