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식시장이 각종 돌발 악재로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습니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급락했다가 곧장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투자자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는데요. 지난 2일 미국발(發) 경기 침체 공포로 시작한 코스피 급등락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저렴한 엔화로 매수한 해외 자산 재매도), 불안한 중동 정세, 인공지능(AI) 거대 기업 실적 우려, 미국 대선 불확실성에도 영향을 받으면서 멈추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증시 전문가 대다수는 지금과 같이 변동성이 큰 장세가 한 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는데요. 문제는 이 상황이 언제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그 시점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다음 달 ‘빅컷(0.5%포인트 이상 기준금리 인하)’을 단행할 때로, 누군가는 11월 미국 대선이 끝날 때로 예상하기도 하는데요. 지금 시장에 어떤 변수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선데이 머니카페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쏟아진 악재에 무너진 코스피···2거래일 만에 시총 270조 증발
지난 2일 미국 경기 침체 공포에 한 차례 무너졌던 코스피는 5일 그야말로 재앙을 겪었습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부터 낙폭을 키우며 2600 선과 2500 선을 차례로 내준 뒤 장중 한때는 10% 이상 떨어지며 2300대까지 밀렸는데요. 특히 외국인투자가가 올 들어 최대 수준인 1조 5297억 원어치를 내다 팔며 지수를 끌어내렸습니다.
이날 코스피의 낙폭은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1년 8월 9일 기록(184.77)을 13년 만에 경신한 사상 최대치였습니다. 종가 기준 하락률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24일(10.57%) 이후 가장 높았고요. 코스닥지수도 88.05포인트(11.30%) 하락한 691.28로 거래를 마쳐 지난해 1월 10일(696.05) 이후 1년 7개월 만에 700 선을 내줬습니다. 이날 코스닥의 장중 하락 폭은 이른바 ‘닷컴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9월 18일 이후 24년 만에 가장 컸고 하락률은 2020년 3월 19일(11.71%)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투매 심리가 확산되자 한국거래소는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 거래를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를 동시에 발동했습니다. 국내 증시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2020년 3월 19일 이후 4년 5개월 만이었습니다. 이른바 ‘공포지수’라 부르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 지수)는 110.66% 상승한 45.86으로 마감해 2019년 4월 10일(139.94%)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1997조 7458억 원으로 쪼그라들었어 올 1월 22일 이후 7개월 만에 2000조 원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2~5일 2거래일간 증발한 시총 규모만 270조 원 이상에 달했습니다.
국내 증시의 속절없는 추락에는 지난주 미국 제조업 지표에 이어 고용 지표까지 부진했던 점이 직격탄이 됐습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과도한 투자비 지출 등 빅테크 실적으로 대두된 AI 시장 관련 의구심도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또 다른 요인이 됐습니다. 엔화 가치가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하며 외국인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본격적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점도 한국과 일본 증시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고요.
하루만에 장중 최대폭 상승···극에 달한 변동성
다음 날인 6일에는 코스피가 3거래일 만에 간신히 반등했는데요.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한 지 단 하루 만에 사상 최대 폭까지 올랐다가 다시 2400대로 주저앉는 등 장중 변동성이 극에 달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이날 코스피의 장중 최대 상승 폭인 137.22는 정부의 공매도 전면 금지 직후인 지난해 11월 6일의 134.03을 뛰어넘는 국내 증시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바로 전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던 한국거래소는 이번에는 두 시장에 5분간 프로그램 매수 호가 일시 효력 정지(사이드카)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거래소가 코스피와 코스닥에 매수 사이드카를 동시에 발효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불거진 2020년 6월 16일 이후 4년 2개월 만이었고요. 일본의 금리 인상과 엔화 강세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물량이 상당수 소화되면서 과매도 국면은 겨우 벗어났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누구도 안심하지 못했습니다.
7일에는 “금융자본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의 항복 선언이 추가적인 주가 상승을 불렀는데요. 일본이 ‘금리 인상 자제’ 모드에 돌입하면서 증시의 수많은 변수 가운데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물론 남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물량이 언제라도 증시 충격의 뇌관으로 돌변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상태이지만요.
이날은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005930)가 미국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3E 8단 제품을 납품하기 위한 퀄테스트(품질 검증)를 통과했다는 외신 보도에 힘입어 3% 이상 뛰어오른 점도 코스피 상승에 힘을 보탰습니다. 삼성전자가 “테스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이를 공식 부인했음에도요.
국내 증권사들 코스피 전망 줄하향…추세 반등 계기 당장 안 보여
증시가 연이틀 반등했지만 폭락분을 모두 되돌리지는 못했습니다. 8일에는 다시 0.45% 하락하고 9일에는 1.24% 오르면서 250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흐름을 보였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하반기 증시 전망을 줄줄이 하향해 코스피가 연고점(2891.35)을 쉽게 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증권(016360)은 코스피의 하반기 예상 범위를 기존 2650~3150에서 2400~2950으로 낮췄고 연내 최대 3200까지 오를 것으로 봤던 대신증권(003540)도 그 범주를 2300~2900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하반기 지수 범위를 2500~3100으로 예상했던 NH투자증권(005940)은 코스피가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2600~2800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고요.
2일까지만 해도 코스피 하락의 1차 지지선을 2620, 2차 지지선을 2500으로 제시했던 한국투자증권은 증시가 사상 최대폭으로 급락하자 하단 범위를 2320까지 크게 내렸습니다. IBK투자증권은 코스피가 반등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으면서도 그 수준을 2600~2650으로 제한했고요.
지금은 전문가들도 코스피가 추세적으로 반등할 계기를 쉽사리 찾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에 불확실성이 산적한 탓인데요. 당장 이달 14일 미국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22~24일 잭슨홀 미팅(경제 정책 심포지엄), 28일 엔비디아 실적 발표 등이 모두 증시를 요동치게 만들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미국이 금리를 전격적으로 0.5%포인트 내린다면 증시도 반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 많은데요. 그것도 아무리 빨라야 9월입니다. 9월에 미국 연준이 바로 빅컷을 단행할 지 여부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요.
일각에는 11월에 미국 대선이 끝나고 새 정치 리더십이 확고해지면 주식시장 여건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 너무 멀다는 점입니다. 그 사이 어떤 일들이 증시를 덮칠 지 알 수도 없고요.
당분간은 시장에서 몸을 사려야 하나 싶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거대 야당의 내년 1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 강행이라는 또 다른 악재도 있으니까요.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