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심리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고용·투자 부문이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화 판매는 1년 넘게 ‘하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내수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통계청의 경기순환시계를 보면 ‘하강(6개)’과 ‘둔화(1개)’에 위치한 경기 관련 지표는 총 7개로 집계됐다. ‘상승(1개)’과 ‘회복(2개)’를 합친 것(3개)보다 많다. 둔화·하강 국면에 있는 지표는 올 1~2월 5개에서 3~4월 6개로 늘었다가 지난 5월부터는 7개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순환시계는 국내 경기 관련 10개 핵심 지표가 경기 사이클(상승·둔화·하강·회복) 중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통계청은 각 지수의 순환변동치(계절·추세 변동 요인을 제거한 값)가 전월 대비 감소하는 동시에 장기 추세선까지 밑돌고 있을 때 하강 국면에 놓여 있다고 판단한다.
이 중 내수 지표가 특히 부진한 모습이다. 재화 소비 수준을 나타내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6월부터 13개월 연속으로 하강 국면에 머물러 있다. 서비스업 소비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업생산지수는 지난달 2월부터 하강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투자·고용 지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설비투자는 7개월, 건설기성은 2개월 연속으로 하강 국면에 진입해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둔화 흐름을 나타내던 취업자 수는 올해 3월 하강 국면에 들어왔다. 15세 이상 취업자 증가 폭이 5월(8만 명)과 6월(9만 6000명) 모두 10만 명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1~2월 월별 취업자 증가 수가 30만 명을 넘었던 것에 비하면 대폭 줄어든 수치다.
그나마 호조를 보이는 수출도 경기순환시계상에선 지난 4월부터 둔화 국면에 진입해 있다. 비록 장기 추세보단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순환변동치의 전월 대비 증가율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수출은 보통 1년 전 대비 증가율로 따지기 때문에 실제 둔화세로 진입할지는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기업경기실사지수는 지난해 4월부터, 소비자기대지수는 작년 12월부터 계속 회복 국면에 위치해 있다.
통계청의 경기순환시계는 ‘수출의 온기가 내수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부의 경기 진단이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강 국면에 있는 소매판매액지수·서비스업생산지수·취업자 수 등 6개 지표 대부분은 국내 경기와 직결되는 반면 기업경기실사지수·광공업생산지수 등 상승·회복 국면에 있는 지표들은 수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들이었다. 수출이 늘면서 발생해야 할 낙수효과가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탓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가 장기간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본질적인 원인은 고물가와 고금리”라고 설명했다. 염 교수는 “금리가 높아지면 각 가계는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기 마련”이라며 “대출을 많이 받은 가계의 경우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 부담이 커져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고물가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염 교수는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높아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소비가 위축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고물가가 오래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근로자 실질임금은 2022년(-0.2%)에 이어 지난해(-1.1%)에도 감소했다.
실제로 내수를 구성하는 주요 지표들은 기준금리 인상이 마무리된 지난해 1월 이후 꾸준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3년 1월 103.2(계절조정지수)였던 소매판매액지수는 6월 102.6으로 뒷걸음질 쳤다. 전년동월비 기준 월별 추이를 살펴봐도 2월 한차례 0.8%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올해 내내 마이너스(-2~-3.6%)를 기록했다. 서비스 소비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서비스 생산지수 역시 내수와 직결되는 도소매업은 지난해 12월, 숙박 및 음식점업은 올해 2월 이후 잇따라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
설비투자와 건설 역시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월 설비투자는 지난해보다 1.5% 감소한 데 이어 6월에도 2.7% 하락했다. 건설 수주액은 올해 1분기 15.6% 뒷걸음질 쳤다. 통상 건설업은 수주 계약이 1년가량의 시차를 두고 공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당분간 건설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경제기관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잡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8월 경제전망 수정에서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6%에서 2.5%로 내렸다.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도 경제성장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각각 2.4%, 2.5%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의 재정 집행 여력도 떨어진 상황이다. 정부는 상반기 최고 수준의 재정 신속 집행을 목표로 357조 원 이상을 투입했다. 연간 계획의 63% 이상을 상반기에 쏟아부은 만큼 하반기에는 재정 집행 여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과 부동산 시장 불안 등을 고려하더라도 경기 방어를 위해 통화정책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금리 인하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연되는 상황”이라며 “2분기에 고금리의 부정적 영향이 강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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